삶이 막막할 때 값싼 위로를 얻기보다 카프카를 읽었다 [책마을]
“그레고리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유명한 첫 문장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에 나온다. 자고 일어났더니 벌레가 되어 있더라는 황당한 내용이지만, 약 10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적지 않은 위안을 준다. 현대인의 깊은 불안을 다루기 때문이다.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는 “내가 이 세상에서 하나의 나사에 불과하지 않을까, 나 하나쯤 이 세상에서, 심지어 내 집에서 사라진들 누구에게 대수이겠는가, 같은 생각을 누구나 한다”며 “카프카는 이 같은 물음을 어느 날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버린 이를 참혹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리며 제기한다”고 설명했다.

카프카는 1883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올해가 탄생 14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민음사와 교보문고가 카프카 단편선인 <돌연한 출발>을 펴냈다. ‘변신’과 ‘시골의사’를 포함해 32편의 중·단편을 담았다.

단편이지만 1~2쪽밖에 안 되는 메모 같은 글이 많다. ‘작은 우화’라는 단편은 7줄에 불과하다. 책에 실린 단편을 엄선하고 번역한 전 교수는 “주제에서나 문체에서나 카프카의 진면목이 두드러지는 글들을 가려 뽑았다”고 했다. 카프카의 사인, 친필 원고, 드로잉 화보, 편지도 수록했다.

카프카의 소설은 겉보기에 위로와 거리가 멀다. 삶의 부조리함과 막막함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작은 우화’는 겁나게 넓은 세상을 정신없이 내달리다 보니 어느새 막다른 골목에 와 버리는 것이 인생이라는 절망적인 통찰을 건넨다.

‘법 앞에서’는 문지기가 지켜 선 겹겹의 문 앞에서, 끝내 입장 허가를 받지 못하고 등받이 없는 걸상에 앉아 평생을 기다리다 쪼그라져 죽은 시골 사람의 모습을 그린다. ‘굴’은 그 어디에도 출구가 없는, 존재의 불안을 다룬다.

값싼 위로의 말보다 삶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더 위안이 될 때가 있다. 카프카가 그런 경우다. ‘삶이란 원래 그렇다’고 ‘당신의 삶만 이상한 건 아니다’고 소리 없는 위로를 건넨다.

전 교수는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하고 막막하기만 하던 시절 카프카의 막막한 글들을 읽고 옮김으로써 삶을 감내할 수 있었다”며 “이 한 권의 책이, 아직도 삶이 버거운 사람들의 손안에, 카프카를 아끼는 사람들의 손안에, 따뜻하게 쥐여져 있기를 바라 본다”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