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신영도 한양대 명예교수/사진=리음 제공
고인이 된 신영도 한양대 명예교수/사진=리음 제공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한국 가곡 부흥기를 이끌었던 테너 신영조 한양대 명예교수가 별세했다.

고인은 14일 경기도 수원 자택에서 지병인 뇌경색으로 숨을 거뒀다. 향년 80세.

고인은 2001년 뇌경색으로 쓰러졌지만 2005년 재기 독창회를 열고 복귀했다. 하지만 2010년 뇌경색이 재발하면서 투병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 교수는 고(故) 박인수, 엄정행과 함께 '한국의 3대 테너'로 불린 인물이다. 1943년 9월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중고교 시절에는 야구부로 활동했다. 장충고 시절, 부상으로 병원 입원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클래식에 빠져 성악가의 길을 걸었다.

1963년 한양대 성악과에 입학했고, 동급생들과 실력 차를 느끼고 좌절해 군에 자진 입대했했다. 이후 군대에서 '내 인생에 음악이 없으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무리한 연습으로 성대결절이 발병했지만, 2년간 필담으로 의사소통하며 회복했고, 대학 졸업 후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음악원과 독일 뮌헨국립음대를 거쳐 독일 슈튜트가르트 오페라극장 독창 오디션에 합격하고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 국제성악콩쿠르에서 입상했다.

1975년 귀국한 후 모교 강단에 섰고, 2009년 2월 정년퇴직할 때까지 34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이와 함께 1976년부터 1995년까지 국립오페라단 단원으로 활약했다. '라 트라비아타', '리골렛토', '돈조반니', '사랑의묘약' 등과 '춘향전', '자명고', '원술랑', '원효대사' 등 창작 오페라까지 수십편의 오페라에서 주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1976년부터 2009년까지 국내외에서 100여 차례 독창회를 가졌고, 신영조 애창곡집 1, 2, 3, 바로크음악집, 데뷔 25주년 기념음반, 내마음의 노래1, 2, 성가곡집 등 10여 개의 단독앨범을 냈다.

그동안의 활동을 인정받아 한국음악평론가협회 주최 1996년 '올해의 음악가상', 1999년 '한국음악상', 2002년 백남학술상, 2009년 옥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이순호 씨와 딸 신교진·명진·경진 씨, 사위 문훈 씨 등이 있다. 빈소는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 발인은 17일 오전 6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