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살비아티가 그린 ‘기회의 신’ 카이로스. 뒷머리가 없고 발에 날개가 달렸다.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살비아티가 그린 ‘기회의 신’ 카이로스. 뒷머리가 없고 발에 날개가 달렸다.
이탈리아 토리노박물관에 특이한 대리석 부조(浮彫)가 있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조각가 리시포스의 ‘카이로스(Kairos)’다. 카이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간(때)과 기회의 신이다. 그런데 생김새가 이상하다. 앞머리는 무성하고 뒤쪽은 대머리다. 양쪽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려 있고, 손에는 저울과 칼이 들려 있다.

그 아래에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시인 포세이디포스의 풍자시가 적혀 있다. “너는 누구인가? 나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간이다/ (…) / 머리카락은 왜 얼굴 앞에 걸쳐 놓았지? 나를 만나는 사람이 쉽게 붙잡게 하려고./ 그런데 뒷머리는 왜 대머리인가?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지.” 기회는 바람같이 사라지기 때문에 한 번 놓치면 붙잡을 수 없다는 의미다.

'기회의 여신'도 비슷한 생김새

16세기 회화에도 이런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살비아티가 그린 ‘기회의 신’ 카이로스 역시 앞머리가 풍성하고 뒷머리는 없다. 어깨와 발에 달린 날개, 양손의 저울과 칼까지 그대로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여신’ 오카시오도 생김새가 똑같다. 발뒤꿈치 날개까지 닮았다. ‘때’와 ‘기회’를 뜻하는 영어 단어(occasion, opportunity)가 여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가운데 우연이 아니라 노력으로 얻는 ‘기회(opportunity)’는 ‘가까이(ob, op)’와 ‘항구(port)’를 합친 말로, 밀물 때에 맞춰 항구에 들어오는 배를 상징한다.

이처럼 시간과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자 암수한몸이다. 시계와 문명의 상관관계도 마찬가지다. 인류가 기계식 시계를 처음 만든 것은 13세기 들어서다. 그전까지는 해시계와 물시계에 의존했다. 기술 혁신의 일등 공신은 탈진기(脫進機, escapement)였다. 톱니바퀴의 진행 속도를 일정하게 만드는 이 기구는 ‘시계의 심장’에 해당한다.

이 장치를 개발한 주역은 유럽의 대포 기술자들이었다. <시계와 문명>을 쓴 이탈리아 역사학자 카를로 치폴라는 “초창기 시계가 쇠나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공공 시계였으므로 제작자들은 대장장이나 자물쇠공, 총포공 등 금속을 다루는 사람이었다”고 설명한다.

도시 한가운데 성당이나 광장에 설치되던 시계가 신흥 부자들의 사치품으로 바뀌자 시계 제작자들도 대포 장인보다 보석 세공인처럼 변했다. 수요가 커지고 시장이 넓어지면서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와 뉘른베르크 등 시계 제조업의 중심지가 생겨났다.

그러나 신교와 구교 간의 ‘30년 전쟁’(1618~1648) 등으로 많은 시계 기술자가 영국과 스위스로 떠났다. 당시 시계공은 문자 해득력이 높은 우수 인재였다. 이들의 이주로 시계 산업의 지형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신기술과 숙련공을 받아들인 영국과 스위스, 스웨덴은 새로운 산업 중심지가 됐다. 시계산업은 설비보다 인력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이 국가 경제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로 컸다. 가장 낙후한 지역이던 영국이 기술 혁신을 선도하는 산업국가로 거듭난 것도 이 덕분이었다.

물론 기술 인력의 이동만으로 국가 경제가 발전하는 건 아니다. 많은 시계공이 15~16세기 오스만 제국으로 갔지만 그 나라에서는 변화가 없었다.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술 수혜국이 될 수 없다. 동양에서도 그랬다. 일본은 서양 시계를 모방하다가 17세기 말부터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었지만, 중국은 수공업과 기술을 천대하다가 시계 후진국이 되고 말았다.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퍼드가 “근대 산업 시대의 핵심 기계는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기술과 문명>)라고 역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17세기 이후에는 시계 제작의 전문화와 세분화가 이뤄져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이때의 시계 제작은 물리학과 역학의 이론적 발견을 실용화한 최초의 산업이었다. 18세기 산업혁명도 이 토대 위에서 싹을 틔웠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차이

시곗바늘이 오른쪽으로 도는 이유 또한 ‘기회’와 관련이 있다. 시계 시침과 분침, 초침의 방향은 해시계의 막대 그림자 움직임과 같다. 지구 위도에 따라 그림자가 달라지지만, 문명이 앞선 북반구에서 볼 때 해시계의 그림자는 늘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오늘날 시계침의 회전 방향이 이렇게 정해졌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시간의 개념을 두 개로 나눴다. 이들은 단순히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라는 신의 이름으로 불렀다. 이는 절대적이고 정량적인 시간이다. 주관적이고 정성적인 느낌의 시간은 ‘카이로스’라고 했다. 바로 ‘기회의 신’이다. 시간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쏜살’도 되고 ‘일각 여삼추’도 된다. 프랑스 시인 자크 프레베르가 공원에서 입 맞춘 황홀의 시간을 ‘영원의 한순간’이라고 한 것은 기막힌 표현이다.

시간에 느낌이 있듯이 시계에도 표정이 있다. 시계 광고를 보면 대부분 시침과 분침이 10시10분을 가리키고 있다. 웃는 입 모양이다. 초침은 35초에 맞춰져 있다. 원을 3분의 1씩 나눈 Y자의 황금비율이다. 시계에 얼굴 근육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10시10분의 미소와 8시20분의 우울을 금방 구분할 줄 안다.

시곗바늘은 반복해서 회전한다. 그러나 우리 인생 시간은 반복되지 않는다. 그 속에 많은 기회가 숨겨져 있다.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바로 붙잡지 않으면 지나가 버린다. 카이로스가 한 손에 저울, 한 손에 칼을 든 것도 의미심장하다. 분별할 때는 저울처럼 신중하게, 결단할 땐 칼같이 하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