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오페라단, 모차르트 '마술피리' 세종문화회관서 공연
첨단기술로 동화적 환상 구현한 무대에 성악가들 '개그본능'까지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는 무대도 음량도 크지 않았던 18세기에 만들어진 오페라다.

독일어로 된 노래와 대사가 어우러진 가극 형식인 징슈필(Singspiel)이다.

서울시오페라단(단장 박혜진)은 올해 시즌 개막공연으로 이 작품을 택하면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드넓은 무대와 객석 때문에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해결책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규모를 키우고 미디어아트 전문가에게 연출과 무대 디자인을 맡기는 것이었다.

덕분에 관객들은 이번 공연에서 '마술피리'의 동화적 환상을 첨단 기술로 재탄생시킨 무대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연출가 조수현은 무대를 원래 높이에서 1m가량 높인 뒤 그 위에 계단을 설치했고, 3중 액자무대 구조로 무대의 상하·좌·우 공간을 축소해 '마술피리'에 적합한 규모로 만들었다.

또한 위아래로 이동하는 구조물을 활용해 더욱 자유롭게 무대 폭을 조정할 수 있었다.

탁월한 프로젝션(영사) 기술은 음악과 조화를 이루며 마술피리 소리가 불러오는 환상의 세계를 매혹적으로 구현했다.

주인공 타미노 왕자가 피리를 불면 갖가지 동물들이 나타나고 꽃들이 피어나고 맹수들이 저 멀리 물러간다.

새잡이 파파게노가 팬플루트를 불 때마다 하얀 새 떼가 등장하고 어린 천사들이 민들레 홀씨를 날리며 빛 속에서 날아온다.

이유선의 의상, 마선영의 조명, 강대영의 분장도 전체적인 연출 콘셉트와 조화를 이루며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

첨단기술로 동화적 환상 구현한 무대에 성악가들 '개그본능'까지
지휘자 이병욱이 이끈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모차르트 당대의 '마술피리' 초연 오케스트라에 비해 규모가 훨씬 커졌음에도 명료하고 균형 잡힌 연주를 들려줬다.

투명한 현과 경쾌한 목관이 주고받는 대화가 신선했고 작품 해석은 정교했다.

합창은 서울시합창단과 마에스타오페라합창단이 함께해 60명에 달하는 대규모였지만 음량의 균형이 적절했다.

독일 교회음악의 장중함을 지닌 자라스트로 사원의 합창음악을 두 합창단은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지난달 30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공연에서 캐스팅은 두 팀으로 나뉘었다.

파미나 공주 역 중 첫 팀의 소프라노 김순영은 정제된 미성과 애절한 감성 표현으로 슬픔의 진정성을 보여줬고, 두 번째 팀의 소프라노 황수미는 여러 콘서트에서 보여준 역량을 뛰어넘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전막 배역으로 진가를 발휘했다.

타미노 왕자 역의 테너 박성근은 유럽 무대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련한 가창력 위에 섬세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표현력을 조화시켰다.

같은 배역의 테너 김건우는 자연스럽고 수월한 고음과 아름다운 레가토, 자신감 가득한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마술피리'의 성패를 좌우하는 실질적인 주인공인 파파게노 역의 바리톤 양준모는 그동안 숨기고 있던 '개그 본능'을 폭발시켰다.

'마술피리'에는 독일어 아리아, 중창, 합창 외에 우리말 대사가 자주 나오는데, 관객들은 파파게노가 말하려고 입을 열기만 하면 웃음을 터트렸다.

대본의 한국어 대사 자체도 위트가 넘쳤지만 양준모의 애드리브도 빛났다.

그는 랩 수준에 가까운 빠른 성악 패시지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내 관객을 놀라게 했다.

같은 역을 노래한 바리톤 김기훈 역시 관객의 큰 사랑을 받았다.

무대 위를 종횡무진 달리면서도 에너지와 유연함을 잃지 않는 가창과 타고난 듯한 유머 감각이 객석에 즐거움을 선사했다.

첨단기술로 동화적 환상 구현한 무대에 성악가들 '개그본능'까지
밤의 여왕 역의 소프라노 유성녀와 김효영은 고난도의 콜로라투라 테크닉을 구사하며 유명한 아리아 '지옥의 복수'로 큰 박수를 받았다.

특별히 깊은 저음을 노래해야 하는 자라스트로 역의 베이스 임철민과 이준석 역시 어려운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다만 밤의 여왕과 자라스트로의 경우 의상과 분장, 무대 위의 위치가 가창에 부담이 된 것은 아닌가 싶었다.

부분적으로는 평소의 뛰어난 기량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밖의 조역들도 모두 적역이었다.

특히 자라스트로의 대변인과 사제 역할을 맡은 베이스 최공석의 기량이 돋보였고, 모노스타토스 역의 테너 김재일의 표현력이 뛰어났다.

지난달 30일 공연에서는 세 천사(원작에선 '세 소년') 역을 세 명의 성인 소프라노가 노래했고, 31일 공연에선 여자 어린이 여섯 명이 노래했는데, 밤의 여왕의 세 시녀와 더불어 양쪽 모두 깊은 인상을 남겼다.

rosina@chol.com
첨단기술로 동화적 환상 구현한 무대에 성악가들 '개그본능'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