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힙합패션 외길…재킷 하나로 '폴로룩 아이콘' 변신
나의 옷차림을 매일 기록하는 ‘데일리룩’. 아주 드물지만, 이 귀찮아 보이는 일을 즐기는 남자들이 있다. 매일 밤 다음 날 있을 일들과 만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옷을 골라놓고 잠들며, 아침마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들고 같은 장소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패션업계 종사자일까? 아니다. 누군가가 강제로 시켜서? 그럴 리 없다.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어떤 동력일까. 매일의 나를 기록하는 ‘데일리룩’에 빠진 남자들. 오늘의 주인공은 오솔 씨(사진)다. 1983년생인 그는 16년째 피트니스를 운영 중이다. ‘어른의 캐주얼’을 콘셉트로 8년째 매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runseoul)에 옷차림을 기록한다.

▷매일 사진 찍는 일, 번거롭지 않나.

강제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절대 못 했을 것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일과 가족을 포함해 서너 가지 정도다. 그중 하나가 옷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저 일기처럼 내 모습을 남긴다는 그 자체가 좋았다. 시간이 지난 뒤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고 싶었다.

▷옷 입는 센스가 탁월하다. 패션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

멋 부리는 건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 어린 시절 가정환경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열 살 때 짝꿍이었던 친구가, 어머니가 사다 준 새 옷을 입고 등교한 날 보며 “어느 고물상에서 주워 왔냐”고 비웃었다. 어린 마음에 큰 상처가 됐던 일인데, 그때부터 ‘앞으로 누가 봐도 괜찮은 사람이라 여겨질 만큼 깔끔한 차림으로 다니겠다’고 다짐했다.

▷‘어른의 캐주얼’ 스타일을 동경하나.

20대까진 흑인 음악에 푹 빠져 힙합 스타일을 입고 즐겼다. 머리도 빡빡 밀었다. 인디 밴드 생활을 했다. 그때도 셔츠와 수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왠지 가장 남자다운 모습 같았다. 서른 살 무렵 처음으로 머리를 길렀고, 패션도 바꾸고 싶었다. 그때 폴로 랄프로렌의 트위드 패턴 울 패딩 조끼가 눈에 들어왔다. 홀리듯 샀는데 문제는 같이 입을 옷이 전혀 없더라. 골반까지 내려오는 통 넓은 바지에 두 사람이 들어가도 족할 큰 셔츠들만 입어 왔으니. 그때부터 조끼와 어울리는 걸 사기 시작했다. 스웨터, 치노 팬츠와 구두를 샀다. 큰 옷들은 자연스럽게 버렸다.

▷10년 넘은 힙합 스타일에서 포멀한 캐주얼로의 전향이 쉽지 않았을 텐데.

시행착오도 많았다. 인터넷몰에서 무작정 검색하고 입어보기도 여러 차례. 그러다 10년 전쯤 옷 잘 입는 ‘꽃할배’로 알려진 글로벌 인플루언서 ‘닉 우스터’의 옷차림을 봤다. 톰 브라운과 몽클레어가 협업한 패딩 재킷과 그렌슨이란 브랜드의 부츠. 정말 큰돈을 주고 그 옷과 부츠를 샀다. 브랜드를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뭐가 좋은 옷인지 조금씩 감이 왔다. 스타일 바꾸는 데 2년은 걸린 것 같다.
폴로 재킷으로 가득 채운 오솔의 옷장.
폴로 재킷으로 가득 채운 오솔의 옷장.
▷폴로 옷만 5~6년을 입었다고.

6년 정도 폴로만 입었다. 대충 생각해도 타이 50여 개, 블레이저 30여 개, 스웨터 40여 개, 코트나 아우터 30여 개, 바지 30여 개. 당시엔 팬티까지도 이 브랜드를 입었으니 말 다했다 싶다. 왜냐고? 톰 브라운을 한번 입고 나서 브랜드엔 어떤 장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폴로 랄프로렌은 아메리칸 캐주얼 장르 안에 꽤 많은 스펙트럼이 있다.

▷옷을 잘 입는 게 삶에 어떤 의미인가.

트레이너로 지금의 업을 시작했다. 트레이너는 유니폼을 주로 입기 때문에 출퇴근 복장이 자유롭다. 그런데 슬리퍼 신고 대충 편하게 다니는 문화가 나는 싫었다. 트레이너라는 직업은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전문적이고 큰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체계적 기업형 운영 시스템을 갖춰야 성공하는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일하는 태도를 바꾸고 싶었다. 일반 직장인과 같은 루틴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셔츠에 타이를 두르고 갖춰 입었다.

▷요즘엔 드레익스라는 브랜드를 입는다고.

하나의 브랜드를 소비하면 스타일링이 정말 편하다. 어떻게든 조합이 된다. 실패가 없다. 색감과 원단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데, 여러 아이템도 한 브랜드 안에서 구현한 것들은 조화의 완성도가 남다르다. 폴로에서 드레익스로 넘어간 이유는 단순하다. 폴로에선 할 수 있는 스타일링을 거의 다 해봐서다.

▷매일 룩을 담으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스스로 인플루언서라고 하기 어렵다. 다만 데일리룩을 통해 옷을 좋아하는 수없이 많은 친구를 만났다. 옷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 아래 직업도, 환경도, 사는 곳도 다 다르지만 서로 강하게 묶여 있다는 걸 느낀다. 대화를 시작하기 쉽고 정말 금방 가까워진다.

▷패션에 관심 없는 남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

남자들이 겉으론 옷에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똑같다. 나도 깔끔하게 옷 잘 입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대체로 “결혼도 했고 돈도 없는데 내가 무슨 멋이냐”고 말한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거 아닐까. 그냥 해봤으면 좋겠다. 뭔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멋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불가능하다. 막 장사 시작한 사람이 대기업 오너가 되고 싶다는 건 말이 안 되듯, 작은 아이템이라도 하나씩 직접 사보면 좋겠다. 나도 무심코 샀던 조끼 하나로 이후 10년의 삶이 달라졌다. 옷차림은 때로 삶 전체를 바꾼다고 믿는다.

지승렬 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