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화해무드에 다시 주목받는 '한국화 두 거장'
박생광·박래현 특별전
'왜색 화가' 비난 받았던 박생광
'검은 기모노 소녀' 그린 박래현
日서 그림 배우며 영향 받았지만
해방후 자신만의 작품세계 발전
"현대 한국화 입지 다져" 재조명
군산 피난지 그린 '이른 아침' 등
보기 드문 작품 269점 한자리

박생광(1904~1985)과 박래현(1920~1976)은 이런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두 명 모두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을 배웠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발전시키며 ‘현대 한국화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들을 잘 모른다. 한국화에 대한 관심이 서양화의 인기에 가려져서다. 김환기 이우환 등 같은 시기에 서양화를 그린 거장들의 작품이 ‘억대’에 팔릴 때, 박생광과 박래현의 작품은 외면받은 이유다.
○한국미술 지평 넓힌 박래현

전시장에 들어서면 박래현의 작품이 먼저 보인다. 오랜 기간 ‘한국화의 거장’ 운보 김기창의 부인으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남편 못지않게 한국 미술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박래현의 작품엔 격동의 근현대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우선 초기 작품에선 일본화의 영향이 도드라진다. 제22회 조선미전에서 총독상을 받은 ‘단장’(1943)이 대표적이다. 검은 기모노를 입은 소녀가 붉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에선 일본화 특유의 얇은 선과 화사한 채색이 돋보인다.
이런 그림체는 해방 이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6·25전쟁 당시 피란지였던 군산의 여인들을 그린 ‘이른 아침’(1956)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에서 배운 화려하고 진한 채색은 온데간데없고, 차분하고 소박한 수묵 담채로 바뀌었다. 일본 ‘몽롱체(채색을 통해 흐릿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표현한 일본 화풍)’ 대신 수탉을 안고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가는 여인, 등에 업혀 잠이 덜 깬 아이 등 피란민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나타내 ‘박래현만의 한국화’를 보여줬다. 전시장 말미에서 볼 수 있는 판화·태피스트리(직물공예) 등은 한국화의 지평을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
○한국화 매력 살린 박생광
박래현의 판화를 보고 나면 박생광의 강렬한 오방색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무당, 모란, 십장생 등 한국의 전통적 소재를 다섯 가지 색깔로 생동감 있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그림이지만, 그는 한때 ‘왜색 화가’라는 비난을 받았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간 뒤 줄곧 일본 화가들과 어울리며 그림을 그려서다. 그런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박생광이 택한 게 바로 민화, 불화, 무속화 등 토속적인 소재였다. 거칠고 굵은 선,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를 통해 한국화만의 매력을 살렸다. 왜색을 벗기 위해 시도한 작품이 그에게 ‘한국 색채화의 거장’이라는 별명을 안겨준 것이다.이번 전시에선 그동안 잘 볼 수 없던 박생광의 밑그림 스케치 100여 점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을 세계 무대에 알린 1985년 파리 그랑팔레미술관의 ‘르 살롱-85’ 특별 초대전 포스터 등 박생광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자료들도 있다. 전시는 순서에 따라 박래현을 먼저, 박생광을 나중에 보는 것이 좋다. 색채가 강렬한 박생광을 먼저 보면 박래현의 작품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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