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련 변호사 "성폭력 사건은 맥락 파악이 중요"
왜 해명은 늘 피해자 몫인가…신간 '완벽한 피해자'
취업 준비하던 여성 A씨는 어렵게 직장에 취업했다.

사장은 몇 차례 성적인 농담을 건넸고, A씨는 항변했다.

사장은 이에 앙심을 품고, A씨가 실수할 때마다 과한 질책과 비판을 일삼았다.

결국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한 A씨는 회사를 그만뒀다.

그러나 잠자리에 누우면 억울함이 치솟았다.

A씨는 '사장이 성희롱했다'고 뒤늦게 밝혔으나 자신의 증언을 빼고는 증거가 없었다.

왜 해명은 늘 피해자 몫인가…신간 '완벽한 피해자'
이번에는 사장의 반격이 이어졌다.

그는 업무능력이 형편없어 야단쳤더니 A씨가 억하심정에 허위 주장을 하며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낮은 업무평가서, 업무 지적을 하며 야단치는 장면을 목격한 직원들의 사실확인서, A씨가 저지른 실수가 담긴 보고서 등 사장의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는 차고 넘쳤다.

A씨는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전락했다.

지난 20년간 성폭력,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의 사건을 맡아온 김재련 변호사는 신간 '완벽한 피해자'(천년의상상)에서 이 같은 예를 들며 성폭력 사건은 애당초 객관적, 물리적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게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인지감수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을 맡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성인지감수성이란 성과 관련된 사건을 상담하거나 수사하거나 재판하는 사람은 특정 단어, 특정 장면을 근거로 판단하지 말고,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 '앞뒤 맥락'을 꼼꼼히 살펴보는 태도를 의미한다.

요컨대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고 세세히 살펴서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해명은 늘 피해자 몫인가…신간 '완벽한 피해자'
책에는 성인지감수성 부재 등으로 피해를 본 여성들의 사연이 가득하다.

딸에 대한 친부와 양부의 지속적인 성폭행, 연예인을 성 착취하는 기획사 대표, 데이트 폭력, 강간 사건, 직장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 상당수 피해자는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2차 가해를 당한다.

심지어 무고나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당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이런 다양한 성폭력 사건에 결여된 성인지감수성과 피해자에게 엄격하게 적용되는 우리 안의 '편견 '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피해자라면 성폭력 피해를 본 후 가해자 집에 놀러 갈 수 있겠어?', '피해자라면 그다음 날 친구들이랑 나이트 가서 놀 수 있겠어?', '피해자라면 그런 일 겪고 SNS에 활짝 웃는 사진을 올릴 수 있겠어?', '정말 싫었으면 소리를 질렀어야지'….
그러나 범죄 피해에 대응하는 방식은 그 사람의 기질, 성장 과정, 주변의 지지기반 등 개인적 환경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사람이 있고, 코믹 영화를 보면서 남들 다 웃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폭력 범죄는 사건 당시 피해자의 심리 상태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지, 합리적 이성을 가진 우리의 심리 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나아가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상 '가해자 중심'이나 '우리의 편견'에 기초해 사건을 바라보기보다는 '피해자 관점'에 따라 면밀하게 앞뒤 맥락을 잘 파악해 사건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228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