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이치로 올라오자 김병현은 '씩' 웃었다
2001년 7월 16일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가 열리고 있던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 일본 ‘국민 타자’ 스즈키 이치로가 타석에 오르자 마운드에 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투수 김병현이 씩 웃었다. 이날 김병현이 이치로를 퍼펙트로 처리하자 한국 팬들 사이에선 난리가 났다. 인터넷은 “저 자신만만한 미소를 봤냐. 김병현이 일본 타자를 작정하고 응징했다”는 글로 도배됐다.

진실은 18년 뒤 스포츠 전문기자 전훈칠과의 인터뷰에서 드러났다. “제가 이치로 팬이었거든요. 직접 만나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서 웃음이 나왔어요.” 사실은 그저 좋아하는 선수와 승부할 생각에 들떴을 뿐이었던 것이다.

<메이저리그, 진심의 기록>은 전직 기자가 유명 메이저리거들의 인생 이야기를 정리해 모은 책이다. 책은 베이브 루스와 마리아노 리베라 등 해외 선수부터 이치로와 오타니 쇼헤이 등 일본 선수, 박찬호 추신수 김병현 류현진 등 한국 선수들의 이야기를 아우른다. 한국 선수들을 다룬 내용이 특히 흥미롭다. 기자가 직접 선수들을 만나 보고 들은 내용을 정리한 덕분이다.

‘원조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2019년 LA 다저스에서 맹활약을 펼치던 류현진을 평가한 내용이 단적인 예다. “박찬호는 류현진에게 부러운 점이 두 가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지금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구선수에게 내일 경기가 없다는 건 미래가 없다는 것과 똑같은 의미라고 했다. 두 번째는 LA 다저스의 타선이다. 그가 던질 때보다 지금 타선이 훨씬 세다고 했다.”

저자는 메이저리거 외에도 야구 영화 ‘머니볼’ 등 야구를 주제로 한 예술, 저자가 응원하는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의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펼친다. 주제의 통일성은 다소 약하지만, 막간에 1~2쪽씩 나오는 KBO리그 이야기가 분위기를 환기해준다. 2021년 SSG 랜더스의 베테랑 외야수 김강민이 40세에 투수 데뷔전을 치른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각 장이 완결성 있게 정리돼 있어 야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부담 없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