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대는 문틈에서 흘러나오던 음악과 커피향…꽤나 근사한 곳이었지"
매끄러운 스마트폰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려 빠르게 휘젓는다. 누구도 강요하거나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눈과 귀를 사로잡는 짧은 영상을 넘기는 일에 모두가 익숙해졌다. 지하철을 한가득 채운 사람들은 나만을 위해 선택한 음악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숙인 채 목적지로 향한다. 기술의 발달은 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어디에서나 우리는 자신만의 공간에 빠져 시간을 보낸다.

어떤 공간마다 사람이 가득한 시절이 있었다. 이화여대 앞, 지금은 사라진 그린하우스를 지나 골목에 들어서면 제니스 조플린의 곡 이름에서 따온 ‘볼 앤 체인’이라는 상호를 가진 음악 카페가 있었다. 음악감상실 ‘올리브’의 뒤를 이어 문을 연 이곳에는 이화여대생을 비롯해 젊은 대학생, 교양인을 자처하는 중년의 남성들이 주로 찾아와 커피와 술을 마셨다. 목재로 마감한 인테리어는 애초에 음악을 듣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됐다.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음악은 과하게 울리지 않고 술과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채웠다. 이런 장소가 성행하던 그 당시 홍익대와 신촌, 이화여대 앞의 분위기를 기억하며 미술평론가 황인은 “화양연화 같았다”고 했다.

화양연화의 시대가 어렴풋이 저물어갈 2000년대 중반 대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줄곧 꿈꿔온 대학가의 풍경이 기대와 사뭇 달라 실망했었다. 다른 목적 없이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존재했던 그 공간들은 스마트폰 같은 개인 음향 기기의 탄생으로 존재의 이유를 잃어가고 있었다. 수십 년 단골을 자청하며 그 공간을 찾던 몇 사람도 그렇다. 영광의 박수보다는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쓸쓸히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공론장의 역할이 카페나 바에서 가상공간으로 넘어갔으니 낭만을 꿈꾸던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 같은 공간은 이제 없다.

얼마 전 해가 저물기 전 그곳에서 음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이화여대 앞으로 향했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서니 파란색 이사 박스가 한편에 쌓여있었다. 카운터 안쪽 벽을 채우던 LP들도 어딘가로 옮겨져 빈 수납장만 남아있었다. 가게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매니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컹하고 내려앉았다. 당분간 이사할 곳을 찾는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었지만, SNS에도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매장의 이전 소식을 이젠 듣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다른 곳에 문을 열어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세월이 묻어있는 공간의 세세한 흔적이 사라지는 것은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모든 것이 디지털 미디어에 기록돼 정보가 되는 시대에 사물과 공간의 역할은 이전과 같지 않다. 볼 앤 체인이 공간으로의 역할을 가까스로 해내는 그 순간에 오래된 공간의 정취를 찾아 오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그 노력은 SNS에 몇 장의 사진으로 남을 뿐이다. 복고풍과 레트로 문화를 담아내는 정보의 홍수 속에 잠시 빛을 내기만 했을 뿐이다.

문득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저장해두고 잊어버렸던 오래된 공간들이 생각났다. 이따금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만지다가 우연히 그곳이 지도에서 사라졌음을 확인한 적도 더러 있었다. 우린 관심과 애정만으로는 지킬 수 없는 오래된 공간의 아이콘이 사라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모두의 낭만에는 각자의 드라마만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공간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변화를 막아내기에는 변명할 여지가 많지 않다. 다만 그것이 한때 누군가의 마음을 채워줬음을, 시대의 장면이 담겨있는 도시의 역사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공간이 됐지만 그곳에는 비비킹과 레이찰스의 친필 사인이 담긴 내한 공연 포스터가 있었다고, 단골 손님이 만들어준 어항과 주인의 초상화가 있었다고, 오래되고 비뚤어져 삐걱대는 문을 열면 쿰쿰한 목재의 향이 퍼지는 꽤나 근사한 공간이었다고.

조원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