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한 제 남편 용서해주세요" 아내가 호소한 까닭은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바로크 미술 최고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
그의 탄생에 숨겨진 '기막힌 사연'
유럽 역사·미술사에도 영향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
그의 탄생에 숨겨진 '기막힌 사연'
유럽 역사·미술사에도 영향

1571년 독일 서부의 도시 지겐. 남편이 보낸 편지를 읽는 아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립니다. 그 순간 지난 결혼 생활이 그녀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10여년 전 앤트워프(벨기에)에서 처음 만났던 초짜 변호사. 열정적인 눈빛과 재치 있는 입담이 매력적이었던 그 남자와의 행복했던 신혼 생활. 사업적·종교적 문제로 다투기도 했지만, 10년을 지지고 볶으며 큰 문제 없이 잘 살아왔습니다. 가톨릭이었던 종교도 남편을 따라 개신교로 개종까지 했습니다. 아이도 넷이나 있었고요.
그랬던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니. 그것도 네덜란드 최고 유력 귀족의 아내와 간통했다가 잡혀서 지하감옥에 갇혔고, 사형당할 날만 기다리는 신세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세상이 산산이 조각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거기서 죽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하고 싶지만…. 그녀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녀, 결단을 내린 듯 펜을 듭니다. 그리고 종이 위에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편지를 받는 사람은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존경하는 공작님, 제 남편이 공작님께 죽을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중략)… 하지만 저는 남편을 용서했습니다. 저를 봐서라도 제발 제 남편 루벤스를 살려주시기를 간곡히 엎드려 빕니다.” 오늘 ‘그때 그 사람들’은 바로크 회화의 거장 피터르 파울 루벤스(1577~1640)의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불륜 상대는 ‘네덜란드 독립 아버지’의 아내

사실 네덜란드라는 ‘나라’의 역사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 지역은 원래 벨기에·룩셈부르크 등과 함께 묶여 ‘저지대’라는 지역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산이 없고 평탄한 지역이라는 뜻입니다. 중세부터 상업이 발달한 덕분에 이곳은 누구나 탐내는 돈 많은 동네였지요. 이들은 한 국가라기보다는 서로 붙어 있는 여러 독립 세력들의 모임에 가까웠고,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도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부르고뉴·14C),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15C), 스페인(합스부르크·16C) 등 여러 강력한 주변 세력의 지배를 받으며 휘둘리게 됐죠.

보다 못한 ‘네덜란드 독립의 아버지’ 오라녜(Oranje) 공작 빌럼이 1566년 반란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대귀족이었던 빌럼이지만 ‘무적함대’를 내세워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던 스페인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번번이 전투에서 패배한 빌럼은 영지를 모두 몰수당하고 독일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한때 네덜란드에서 최고 권력을 자랑하던 귀족이었지만, 이렇게 수입이 뚝 끊겨버리니 생계가 막막했습니다. “살림살이가 어려우니 나라도 돈을 좀 벌어야겠다.” 빌럼의 아내 안나가 나섭니다.
파렴치한 불륜, 그리고 뜻밖의 용서

잘나가는 변호사였던 얀 루벤스에게 안나도 소송을 의뢰합니다. 그리고 둘은 자주 만나면서 재정 문제를 비롯한 여러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그러다 눈이 맞아버렸습니다. 정신없이 ‘잘못된 만남’을 이어가던 둘, 급기야 안나가 얀 루벤스의 아이를 가지기에 이릅니다. 그제서야 빌럼도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둘다 잡아와!”

그리고 피펠링크스는 헌신적인 옥바라지를 시작합니다.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의 생존과 미래에 남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이혼을 금지하는 가톨릭 신앙을 따른 것인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인군자였던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녀는 남편이 갇힌 감옥 인근 도시인 지겐으로 이사를 했고, 빌럼을 비롯한 유력 귀족들에게 끊임없이 남편의 석방을 애걸복걸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저도 남편을 용서했다”면서요.
예상치 못했던 피펠링크스의 반응에 빌럼 공을 비롯한 귀족들의 마음은 흔들렸습니다. 사실 그녀도 최대 피해자 중 한 명인데 말이죠. 피펠링크스가 집안 재산을 처분해 뿌린 돈도 귀족들의 마음을 꽤나 흔들었습니다. 결국 2년간의 노력 끝에 거액의 보석금을 내고 얀 루벤스가 풀려났습니다. 이후에도 얀 루벤스는 계속 가택 연금당한 상태를 유지하다가, 감옥에 갇혀있던 안나가 1577년 죽은 뒤에야 자유의 몸이 됩니다.
이야기가 주는 네 가지 교훈
그 후 이야기는 교과서적인 권선징악 엔딩으로 달려갑니다.


그의 최대 피해자 중 한 명인 빌럼은 안나와 이혼한 뒤 얼마 안 돼 좋은 짝을 찾아 재혼했습니다. 스페인과 싸움을 이어가던 빌럼은 1584년 암살당하지만,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자손들이 결국 1648년 독립을 쟁취합니다. 빌럼은 독립의 아버지로 대대손손 존경받게 됩니다. 오늘날 네덜란드의 상징색이 오렌지인 것도 그의 가문 상징색이 오렌지색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네덜란드 국왕은 빌럼의 가문 출신이고요.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역사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연재 기사를 비롯해 재미있는 전시 소식과 미술시장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