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바리데기가 로봇이었다면?'…상상력으로 다시 태어난 구전설화 [책마을]
바리데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구전설화다. 국왕 부부로부터 버려진 일곱째 딸 바리데기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저승까지 가서 약을 구해오는 내용이다. 구전되다 보니 마을마다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59명의 과학자가 만들어낸 ‘로봇 바리’ 버전을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온북스가 최근 출간한 <바리는 로봇이다>(사진)는 이처럼 바리데기, 아랑 설화, 인어공주 등 우리에게 친숙한 옛이야기를 새롭게 꾸민 소설집이다. 박서련, 김현, 조예은 등 젊은 작가 8명의 짧은 소설 8편을 묶었다.

익숙한 이야기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상상력이 돋보인다. 옛이야기와 닮은 듯 다른 지점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컨대 박서련 작가의 ‘바리는 로봇이다’에서 로봇 바리는 주문 제작한 맞춤형 로봇이다. 하지만 주문자의 마음에 들지 못한 데다 갑자기 전쟁까지 일어나면서 거리에 버려진다. 설화 속 바리공주가 마주한 고난의 세계가 저승이라면, 로봇 바리에게는 전쟁에 휩싸인 현실 세계가 곧 지옥이다.

‘고난을 통해 비로소 딸로 인정받는 이야기’인 바리데기 설화는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되기를 선택하는 로봇의 성장담으로 재탄생했다.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바리는 로봇이어서 나이를 전혀 먹지 못했다. 바리는 그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나이를 먹지 못한다는 것은 완료되지 못한다는 것 같았다. (중략) 그렇지만 바리는 나이를 먹지 않아서 되고 싶지 않은 것 또한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조예은 작가는 ‘탑 안의 여자들’에서 라푼젤 이야기를 애정과 증오가 뒤섞인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그린 소설로 바꿔 쓰고, 김유담 작가는 ‘아랑은 참참참’에서 정절을 강조한 아랑 설화를 유쾌하게 비틀었다. 사람의 손톱을 먹고 그 사람이 되는 쥐처럼 소설가를 ‘복사’하는 도수치료사의 이야기인 ‘속초 도수치료 후기’는 오한기 작가 특유의 냉소적이고 능청스러운 유머가 돋보인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