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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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SF(공상과학) 문학 3대 거장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아서 클라크가 남긴 말이다. 2008년 세상을 떠난 그는 소설마저 인간이 쓸 필요가 없는 때가 올 것을 알았을까.

이미 글을 쓰면 그림이 완성되고, 자동차는 운전사 없이도 제 갈 길을 찾아가는 세상이다. 마법 같은 기술의 시대를 이끄는 주역은 인공지능(AI)이다. AI가 작동하는 새로운 세계에서 인간은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여행이나 다니며 살게 될까. 아니면 ‘킬러 로봇’에 쫓겨 다니는 고달픈 신세가 될까.

[책마을] AI 의사는 20년 안에 인간을 능가한다
신간 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2041년으로 떠난다.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먼저 2041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나온다. 약 20년 뒤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인도 소녀 나야나의 가족은 실시간으로 보험료가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한다. 건강에 안 좋은 음식을 먹으면 보험료가 늘고, 담배를 끊으면 보험료가 줄어드는 식이다. 일상생활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AI가 추적해 보험료를 산출하는 것이다. 인도 소녀 이야기뿐만 아니다. 스리랑카 소년 카말은 쓰나미에 쓸려나갈 위험에 처한 자동차를 원격 운전으로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미국 건설회사 근로자들은 로봇이 건설 공사에 투입되면서 정리해고 위기에 놓인다.

소설은 상상 속 얘기로 치부하기 어렵다.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 연애마저 비대면으로 하는 중국인 여성과 가상현실(VR) 레이싱 게임에서 익힌 운전 실력으로 자율주행차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스리랑카 소년의 얘기는 현재 기술 수준에 비춰 봐도 개연성이 있는 설정이다. “실현 가능한 기술이 이미 존재하거나 20년 내 실현될 가능성이 80% 이상인 기술을 바탕으로 집필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소설에 뒤이어 기술 분석이 나온다. 진단용 AI는 20년 안에 거의 모든 의사를 능가할 것이며, 신약 개발에 필요한 시간도 획기적으로 단축돼 인간 수명이 20년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대화 AI 챗 GPT의 2041년 버전은 학생 개인별 맞춤형 교사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딥러닝, 확장현실(XR), 자율주행 등 총 10개 주제를 다룬다. 구글 차이나 대표를 지낸 리카이푸가 기술 분석을, SF 작가 천치우판이 소설을 썼다.

AI와 인류의 미래에 관한 저자들의 전망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이다. 리카이푸는 서문에서 “AI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을 맡고, 인간은 창의성이 필요한 작업이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며 “개개인의 잠재력과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AI가 드리울 그늘도 소홀히 넘기지 않는다. AI에 의한 일자리 잠식과 그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 자율 무기에 의한 대량 살상 가능성, 개인정보 노출과 사생활 침해 문제 등이다. AI를 통해 인류는 행복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철학적인 질문도 던진다. 2041년에도 싱귤래러티(singularity), 즉 AI가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시점은 오지 않을 것으로 보는 등 기술적 한계 역시 인정한다.

에 나오는 미래 세계는 오늘날과 다른 점만큼이나 비슷한 점도 많다. 인도에선 카스트 제도가 소년 소녀의 사랑을 가로막는다. 호주의 20대 여성은 원주민 차별에 좌절감을 느낀다. 2041년에도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거짓말도 한다.

지나친 낙관과 비관을 모두 배제하고 AI와 인류의 미래를 탐색해 볼 수 있는 입문서다. 다만 AI의 현황과 전망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독자라면 개론에 그치는 다소 뻔한 설명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