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셋에 세상 떠난 딸을 위해…아버지는 '마지막 선물'을 지었다
구은서의 책이 머무는 집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
유학중 교통사고로 죽은 딸
책을 좋아하던 그를 기리려
아비는 도서관을 지었다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
유학중 교통사고로 죽은 딸
책을 좋아하던 그를 기리려
아비는 도서관을 지었다
친구와 단박에 가까워지는 방법은 그 친구의 집에 놀러가보는 거죠. 그의 취향대로 꾸며진 방과 손때 묻은 물건들, 친구를 닮은 가족을 만나 보면 친구의 말과 행동을 더 잘 이해하게 되잖아요. 새해 목표 중 하나로 ‘독서’를 적은 당신에게, 전국에 있는 책의 집을 격주로 소개합니다.


‘딸바보’ 이 대표는 둘째 딸 진아 씨를 2003년 잃었습니다.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슬픔에 잠겨 있던 이 대표는 몇 달 뒤 딸을 위한 도서관을 짓기로 합니다. 진아 씨가 유난히 책을 좋아했던 기억 때문입니다. 진아 씨 또래 이십대 청년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도서관일 것이라는 생각도 했죠.

이 대표가 도서관을 지으며 내건 조건은 단 하나. 딸의 이름을 기리는 것이었습니다. 도서관에는 진아 씨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이 대표와 오랜 인연을 이어온 도서관 사서들은 그를 ‘명예관장님’ 또는 ‘진아 아버님’이라고 부릅니다. 어린이자료실을 함께 둘러볼 때는 아이들에게 ‘진아 언니’ 또는 ‘진아 누나’ 아버지라고 소개하기도 합니다.

이진아기념도서관의 가장 큰 특징은 오롯이 책 읽는 공간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도서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칸막이 쳐진 열람실(자습실)은 없습니다. 자료실 곳곳에 마련된 좌석, 연중 이어지는 인문학 강의와 저자와의 만남 프로그램은 책 읽는 기쁨을 일깨웁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진아기념도서관은 작가들이 유난히 사랑하는 도서관이기도 합니다. 소설가 김연수는 단편소설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에 이진아기념도서관의 건립 일화를 담았습니다. 이 소설이 실린 <사월의 미, 칠월의 솔>뿐만 아니라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도서관 산책자> 등의 책에도 이진아기념도서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진아기념도서관은 이제 기록을 보관하는 곳을 넘어 생산하는 주체이기도 합니다. 지난해부터 ‘마을기록가’ 사업을 통해 서대문구에 대한 기억을 수집하고 있지요. 주민들이 서대문구에 관련된 기억을 들려주면 이 이야기를 글과 영상으로 남기는 거죠. 자료집도 발간했습니다. 이화여대 정문 근처에서만 60년 넘게 살아온 이신화 어르신 등의 인터뷰도 담았습니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딸을 잃은 할머니(윤여정 분)는 뒤늦게 한글을 배운 뒤 공책에 서툰 글씨로 이렇게 적습니다. 떠난 사람이 꽃처럼 다시 피어나지는 못하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영원한 향기로 남겠지요. 벚꽃 피는 봄날이 간절히 기다려지는 겨울입니다. 이진아기념도서관 1층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몸을 녹이고, 책 한 권으로 마음을 데워보는 건 어떨까요.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