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 빛이 머물 때…신간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는 파괴되었다가 다시 만들어져 교체된다.

그 과정은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이뤄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세포 단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서점도 마찬가지다.

어제와 같은 서점처럼 보여도 그 안에서는 끊임없이 책들이 교체된다.

손이 타지 않는 옛 책들과 신간은 자리를 맞바꾼다.

그렇게 책이 순환하는 가운데 점주가 해야 할 일은,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한 권의 책이 하는 일을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다.

최근 번역 출간된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돌베개)은 독립 서점을 운영하며 겪은 일을 기록한 에세이다.

저자인 쓰지야마 요시오는 대형 서점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다 지난 2016년 가진 돈을 몽땅 털어 도쿄 오기쿠보에 작은 서점을 열었다.

그는 그곳에서 큐레이션을 하고, 작가를 초대해 북 토크도 진행하며 서평도 쓰고 책도 낸다.

서가에 빛이 머물 때…신간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인간은 시간을 들인 일만이 몸에 밴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책과 함께 오랜 시간을 함께한 저자의 애정은 책 곳곳에 배어있다.

그는 책들이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도록 조금씩 배열을 정돈해간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같은 취향이나 장르로 서가를 말끔히 정돈하지 않는다.

일견 아름다워 보일 수 있지만, 거기 내포된 사고의 폭이 좁아질 것을 우려해서다.

그는 책들 사이에 다양한 틈을 두고, 불순물을 섞으면서 서가의 전체적인 톤을 맞추어 간다.

그가 추구하는 건 "변함없는 리듬으로 천천히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다.

책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도 높이지도 않는다.

오랜 시간 서점에서 일했지만, 기본으로 돌아가 책을 만지며 정리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할 뿐이다.

그건 최소한 서점 일과 관련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그는 그저 조용히 일하고,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만히" 책을 좋아할 따름이다.

서가에 빛이 머물 때…신간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책은 서점을 운영하며 일상을 기술한 소소한 기록을 담았지만, 살아가는 이야기도 전한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 이야기, 무척이나 똑똑했지만 이제는 서점을 떠나가 의료기기를 판매하는 선배 이야기, 평생을 술에 찌들어 살았지만 그래도 만화책 '소년챔프'를 사다 줬던 아버지 이야기, 말간 아침 어디선가 들려오는 공사장의 친숙한 소음들, 입을 다물고 책이 전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손님의 모습 등 생을 이루는 소음과 빛깔과 음향이 책을 빼곡히 채운다.

여러 미덕이 많은 에세이지만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평생을 책과 함께 지낸 '서점인'이 건네는 책에 대한 헌사일 것이다.

"한 권 한 권 손길이 닿은 서가에는 빛이 머문다.

그것은 책에 깃든, 우리 스스로의 작은 목소리다.

그저 책을 파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서가에 빛이 머물게 하는 일은 애정이 가득 담겼을 때만 가능한지도 모른다.

"
서가에 빛이 머물 때…신간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정수윤 옮김. 248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