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울려퍼진 '아리아'…사랑이 있어 인생은 아름답다 [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아! 아름다운 밤, 사랑의 밤. 오, 사랑의 아름다운 밤이여.”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이 폴란드 아우슈비츠에 만든 강제수용소에서 난데없이 오페라가 울려 퍼진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잡혀 온 귀도(로베르토 베니니 분)가 독일 장교의 방에 들어갔다가 틀어놓은 노래다. 그는 함께 수감된 아내 도라(니콜레타 브레스키 분)가 어디선가 듣길 바라며 목숨을 걸고 축음기를 틀었다.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온 가락은 ‘호프만 이야기’의 삽입곡 ‘뱃노래’. 귀도와 도라는 ‘호프만 이야기’를 공연하는 오페라 극장에서 눈빛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웠다. 도라는 ‘뱃노래’가 들리자 남편의 선물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눈물을 글썽인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7·사진)는 세계 영화 팬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다.

물론 영화 같은 일이고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비현실적인 일을 하나 꼽으라면 ‘뱃노래’ 아리아가 유대인 수용소에 울려 퍼진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를 만든 인물은 자크 오펜바흐(1819~1880)로, 그도 유대인이다. 유대인의 오페라 음악이 유대인 수용소에 가득 울려 퍼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독일 장교의 방에 유대인 오페라 음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베니니 감독은 오히려 이 같은 모순을 활용해 비극을 극대화했다.

오펜바흐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극심한 인종 차별을 겪고 프랑스로 떠났다. 이곳에서 음악 실력을 갈고닦아 오페라 음악감독이 됐다. 36세엔 작은 건물 하나를 사들여 공연장으로 운영했다. 오펜바흐는 100여 편에 달하는 ‘오페레타’를 만들었다. 오페레타는 오페라에 비해 짧고 가벼운 희극이다.

오페레타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다. 전쟁 등의 영향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엄숙하게 바뀌었고, 오페레타는 서서히 외면받았다. ‘호프만 이야기’는 이런 위기 속에서 탄생한 오페라 명작이다. 오펜바흐가 오페레타가 아니라 오페라를 만든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오페라는 <호두까기 인형> 소설을 쓴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이 주인공이다. 술주정뱅이 바람둥이 호프만의 사랑 이야기 세 개를 담고 있는데 뱃노래는 마지막에 나온다. 매력적이지만 자신을 파멸로 이끈 여인 줄리에타 이야기에서다. ‘뱃노래’는 줄리에타와 그녀의 친구 니콜라우스가 함께 부른다. “이 행복한 순간에서 아득히 먼 곳으로, 시간은 덧없이 흘러 돌아오지 않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