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이 나쁘다’는 것은 경제 원리를 아는 이들에게 상식으로 통한다. 경쟁을 통한 가격 하락과 품질 향상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런데 <석유의 종말은 없다>는 상식을 깨는 주장을 편다. 원유 시장에서는 담합이 시장 안정을 가져왔다고, 더 나아가 담합이 없었다면 석유산업 자체가 개화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 로버트 맥널리는 1991년부터 30년 넘게 에너지 시장을 분석해온 업계 전문가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에너지 분야 고문을 맡기도 했다. 미국에서 2017년 출간된 이 책에서 그는 1850년부터 최근까지 약 160년간의 원유 시장 역사를 살펴본다. 원유산업을 ‘시장의 힘’에만 맡겨 놓았을 때 호황과 불황의 진폭은 커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최초의 석유 시추는 1858년 이뤄졌다. 그 전엔 연못 같은 웅덩이에서 원유를 건져냈다. 공급량이 매우 적어 부유한 사람들만 살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당시 원유 생산량은 연간 1183배럴이었는데 고래기름 생산량이 50만 배럴에 달했다.

[책마을] 록펠러의 '석유 담합 역설'…독과점이 오히려 유가 안정 가져왔다
그 비싼 원유를 땅에서 파낼 수 있다는 소식은 세상을 뒤흔들었다. ‘검은 황금’ 원유를 찾아 사람들이 앞다퉈 시추산업에 뛰어들었다. 원유를 정제하는 정제산업, 원유를 실어 나르는 운송산업도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원유 공급은 너무 많거나, 너무 적었다. 그에 따라 유가는 극단적으로 요동쳤다. 신생기업이 우후죽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그때 존 D 록펠러가 등장했다.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 농산물 유통회사에서 경리 일을 하던 그는 석유산업에 뛰어든 이후 한 가지를 확신했다. 정글과 같은 완전경쟁에서 벗어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담합과 인수합병(M&A)을 통해 세를 불려 나갔다. 그 과정에서 약탈적인 가격전쟁, 위협, 협박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1880년대 중반까지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원유 생산부터 정제, 유통에 이르기까지 석유산업의 모든 측면을 지배했다.

원유 가격도 안정을 찾았다. 스탠더드 오일이 시장을 지배하기 전 유가는 연평균 53% 출렁였다. 록펠러의 통치기 동안엔 변동률이 24%에 불과했다. 가격 자체도 낮아졌다. 록펠러는 높은 가격보다 안정적인 가격을 더 선호했다. 석유시장의 ‘날강도’라 불린 록펠러의 가격 담합이 ‘위장된 축복’으로 나타난 이유다.

담합이 유가 안정을 가져온 데에는 원유 시장의 특수성이 작용했다. 바로 원유 수요와 공급이 단기간에 잘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경제학 용어로 ‘수요의 가격 탄력성’과 ‘공급의 가격 탄력성’이라고 한다. 이상적인 시장이라면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야 하지만 원유 시장에선 이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새로운 유정을 개발하는 데에만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 결과 가격이 균형을 회복하지 못하고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게 된다. 호황일 때 집중된 투자는 공급 과잉을, 불황일 때 억제된 투자는 공급 부족을 유발하기 쉽다.

1911년 스탠더드 오일이 34개 회사로 쪼개진 후 미국에서 원유 가격 변동성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세븐 시스터즈’라 불리는 세계 7대 석유사가 세계 원유 시장을 지배했을 땐 다시 유가가 안정을 찾았다.

이 체제는 1970년대 중동 국가들의 국유화 붐을 거치며 무너졌고, 세계 원유 시장을 관리하는 역할을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떠맡게 됐다. 하지만 OPEC은 말이 카르텔이지 세븐 시스터즈 때에 비해 단결력이 떨어졌다. 세븐 시스터즈 시기 연평균 3.6%에 불과했던 유가 변동률은 OPEC 통치 후 2007년까지 연 24.1%로 치솟았다. 그 후 등장한 셰일 오일은 유가 변동성을 더 높이는 원인이 됐다.

책은 단선적이고 단조롭긴 하지만 160년 원유 시장 역사를 잘 개괄하고 있다. 다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번역이다. 매끄럽지 않은 것을 넘어 뜻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문장이 많다. 원문과 대조해본 결과 아주 기본적인 단어와 문장에서조차 오역이 있었다. 이 책에 관심 있다면 원서를 읽을 것을 추천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