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서양 중세시대 '암흑기'에서 배우는 ESG 경영
서양의 중세시대를 얘기할 때는 ‘암흑기’란 말이 자주 따라붙는다. 이 시기 대부분 사람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과학·예술 등 인류의 지성은 종교 권위에 눌려 퇴보했던 ‘흑역사’가 중세였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아네테 케넬 독일 만하임대 중세사 교수는 저서 <미래가 있던 자리>에서 이런 상식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중세는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지금보다 풍요롭지는 못했지만, 여러 사회 제도와 풍습 덕분에 이런 결핍을 상당 부분 메울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측면에서 보면 근현대보다 중세 사람들이 훨씬 뛰어났던 사례가 많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중부 유럽의 보덴 호수에서는 어부조합이 물고기 남획을 막기 위해 자체적인 규정을 만들고 이를 엄격하게 지켰다. 이는 현대의 공유경제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프랑스의 론강을 가로지르는 아비뇽의 생베네제 다리는 시민들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지어졌고, 독일 은행가이자 인류 역사상 최대 거부 중 한 명인 야코프 푸거(1459~1525)는 사회공헌을 위한 재단을 설립해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주택단지를 건설했다.

풍부한 통계 자료를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듯 쉽게 풀어가는 저자의 솜씨가 훌륭하다. 다만 “성장보다는 분배”라는 유럽 진보 진영 지식인의 전형적인 편견과 유럽 중심적인 사고가 서술 전반에 녹아 있는 점이 아쉽다.

그때도 세계 최선진국이었던 독일 입장에서야 맞는 말이지만, 당시 한국을 비롯해 지금도 세계 일부 국가에선 밥을 굶는 사람이 도처에 널려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