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은 우리 곁에 있다. 올해 8월 경기 이천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만 보더라도 그렇다. 4층에 위치한 신장투석전문병원은 순식간에 유독가스와 연기로 가득 찼다. 고(故) 현은경 간호사를 비롯한 10여 명의 병원 관계자는 끝까지 병원에 남아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의 대피를 도왔다. 가족도 아닌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이런 선택은 어떻게 이뤄질까. ‘이기적 인간’이 인류 문명의 토대가 됐다는 견해만으로 인간 사회를 해석할 수 있을까.

최근 국내에 출간된 <블루프린트>는 “우리 유전자에는 좋은 사회를 위한 청사진(블루프린트)이 새겨져 있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인간은 서로 돕고, 배우고,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다는 것이다. 도덕 교과서 같은 얘기 아니냐고 외면하기에는 책의 내공이 만만찮다. 720쪽에 걸쳐 심리학, 인류학 등을 넘나들며 각종 사례와 논거를 들이민다.

저자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는 ‘통섭의 대가’로 불리는 사회학자이자 의사다. 예일대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 전공 교수로 사회학, 생태학, 진화생물학, 통계데이터과학, 의학 등을 가르친다. 예일대 인간본성연구소장과 네트워크과학연구소 공동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블루프린트>는 그가 인간 본성과 인간 사회 진화의 목적, 기원을 밝히기 위해 매달려온 30여 년간의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다.

[책마을] 태초부터 인간은 서로 돕도록 설계됐다
책은 인간이 ‘사회성 모둠’이라는 공통 능력을 지녔다고 본다. 사회성 모둠은 개인 정체성, 짝과 자녀를 향한 사랑, 우정, 사회 연결망, 협력, 자기 집단 선호, 온건한 계층 구조, 사회 학습과 교육 등 여덟 가지 세부 특질로 나뉜다. 쉽게 말해 인간이란 사랑, 우정, 학습 능력, 나와 다른 개인들의 정체성(개성)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갖췄고 이를 토대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우리의 선한 행위는 18세기 계몽주의가 꽃피운 가치의 산물이 아니다. 더 깊은 심연에서, 선사시대에서 기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이 벌어지고 잔혹한 범죄를 다룬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인류애를 상실한 채 성악설을 믿는 독자라면 생후 3개월 아기를 대상으로 한 심리학 실험 이야기를 살펴볼 만하다. 심리학자 폴 블룸은 아기들에게 두 가지 영상을 보여준다. 하나는 언덕 위로 올라가는 빨간색 동그라미를 ‘돕는’ 파란색 네모. 또 하나는 빨간색 동그라미를 아래쪽으로 미는 노란색 세모. 둘 중 하나를 아기들에게 선택하게 하자 일관되게 파란색 네모를 골랐다.

혹시 아기들이 파란색을 더 좋아한 것 아닐까? 블룸은 색깔과 도형을 다양하게 바꿔 실험해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아기들은 ‘돕는’ 행동을 좋아했다. 또 다른 실험에선 아무런 유인을 하지 않았는데도 걸음마를 뗀 아기들이 서랍을 열려고 애쓰는 척하는 어른을 자발적으로 도왔다.

다만 저자가 아름다운 결론을 향해 근거를 짜깁기한다는 인상을 지우긴 힘들다. 특히 인위적 협력 공동체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저자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만들어진 미국의 브룩팜과 셰이커교, 이스라엘의 키부츠 등을 사례로 제시한다. 자급자족의 전통과 공동 소유, 평등한 삶을 지향한 공동체들이다. 이들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저자는 이런 실패는 금욕주의 등으로 인간에게 새겨져 있는 사랑 본능을 뒤엎으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 즉 외부적 원인 탓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인간은 선하고 지속 가능한, 인간 본연의 협력적 공동체를 설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세계적 석학이 30년 넘게 ‘우리 유전자에는 선한 본성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 매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이 주는 감동과 위로가 적지 않다. 낙관은 본래 비관보다 어렵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책에 대해 “인간 혐오에 대한 고무적이고, 상세하고, 설득력 있는 해독제”라고 평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