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아과에서 시민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 소아과에서 시민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는 생후 14일부터 71개월까지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생후 9개월에 실시하는 3차 검진부터는 발달장애 가능성을 포괄적으로 판별하도록 발달선별검사가 함께 진행됩니다. 한데 이 발달선별검사를 두고 부모들 사이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30대 최모씨는 최근 돌이 된 아이의 건강검진을 위해 문진표를 작성하다 의문스러운 문항을 발견했습니다. 발달선별검사 문항지 첫 부분에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 기재란에 이어 부모의 학력을 묻는 항목이 있었던 것입니다. 최씨는 "이 문항이 발달검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부모의 학력과 아이의 장애가 연관이 있다는 얘기냐"고 물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30대 백모씨도 "부모 정보라며 나이와 학력을 묻는데 이유가 궁금하다. 병원에 물어봤지만 '정 껄끄러우면 안 적어도 된다'는 대답만 들었을 뿐"이라며 의아해 했습니다.

문제가 된 발달선별검사 문항지는 2014년 새롭게 개발·도입한 '한국 영유아 발달선별검사(K-DST)'입니다. 2008년 영유아 국가건강검진 도입 이후 발달평가에 적용되어 온 외국도구(K-ASQ)에는 부모의 학력을 묻는 문항이 없었습니다.

발달선별검사 문항지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사이트에서 누구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문항지에는 아이 이름과 생년월일, 설문 응답자, 부모의 나이와 학력, 아이 신체·발달상의 문제 여부를 묻는 문항이 가장 앞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영유아 발달선별검사 문항지. 사진=국민건강보험공단
영유아 발달선별검사 문항지. 사진=국민건강보험공단
부모의 나이와 학력 응답에는 선택사항이라는 안내가 붙어있지만, 기초적인 신상정보를 기재하는 부분이기에 대다수 부모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문항을 채워 넣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문제는 영유아 발달검사를 진행하는 일선 병원에서도 부모의 학력을 요구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소아과 전문의는 "비슷한 질문을 받아 발달선별검사 사용지침서를 뒤져봤지만, 부모 학력을 요구하는 이유는 나와 있지 않았다"며 "자녀와 상호작용하는 부모의 여러 조건이 자녀의 발달에 영향을 준다는 정도로만 설명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확한 이유를 알 길이 없다 보니 맘카페에서는 다양한 추측이 오갑니다. 한 누리꾼은 "고학력 부모가 키우는 아이는 자존감이 더 높지 않겠느냐"고 추정했고 다른 누리꾼은 "고학력자가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옛날 국민(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정집 평수, 차량 유무, 자가·전세 등을 적어 내던 가정환경조사서가 떠오른다. 서민 기죽이기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한국 영유아 발달선별검사 개발을 주관한 질병관리청에 직접 확인을 해 봤습니다. 부모들의 이러한 추측들은 오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부모의 학력이 자녀의 언어 발달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답변도 내놨습니다.
부모와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부모와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부모의 학력이 자녀들 언어 발달과 연관이 있다는 5건의 선행 연구가 있다"며 "자녀들의 언어 발달이 실제로 부모 학력에 영향을 받는지 분석하기 위해 해당 문항을 도입했다"고 말했습니다.

질병관리청이 언급한 논문은 심리학과, 유아교육학과 등의 사회과학계열 전공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동네 병원에서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은 이유를 알겠더군요. 논문들의 요지만 간단히 뽑아보면 이렇습니다. 해당 연구들에서는 학력이 낮은 부모는 빈곤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140여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연구에서는 고졸 이하 학력의 어머니 83%가 빈곤층이지만, 대졸 이상 어머니가 빈곤층일 확률은 27%에 그쳤다고 합니다.

빈곤층 부모는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그로 인해 아이에게 즉각적이고 활발한 상호작용을 하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 결과로 빈곤층 유아는 그렇지 않은 유아에 비해 듣기, 읽기, 쓰기 등 언어능력이 더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질병관리청은 일부 논문들의 분석과 같이 부모의 학력이 유아 언어발달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해당 문항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필수가 아닌 선택 문항으로 넣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증을 위한 자료가 충분히 수집되면 전문가들과 해당 문항의 삭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영유아 발달선별검사가 도입된 것은 2014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생후 9개월부터 71개월(만 6세)까지 검사를 모두 끝낸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학력을 묻는 다소 불편한 질문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