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 비도 진흥왕순수비일 가능성 크다"

경기 파주시는 파주 향토문화 유산 제8호인 감악산 비의 과학적 정밀조사를 벌여 이제까지 몰자비(沒字碑·원래는 글자가 있었으나 모두 마멸된 비석)로 알려진 이 비석에서 한 글자를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감악산 비에서 '典'(전) 자 확인"…과학적 정밀조사 마쳐
감악산 비는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40-2번지 감악산 정상에 있으며, 비석면은 높이 160.6cm, 너비 76.9cm(상단부), 71.9cm(하단부), 두께 21.6cm로 위쪽이 5cm 넓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 맞배지붕 형태의 비갓(개석)과 2단으로 조각된 비좌(받침돌)를 갖추고 있어 북한산 진흥왕순수비(국보)와 비슷한 외관을 보인다.

하지만 비면이 마모돼 글자를 확인할 수 없어 언제, 누가, 왜 세웠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감악산 정상부는 사방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이 비석 외에도 삼국시대의 보루성이 있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신사(神祠)도 있어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기록돼 있다.

이번에 판독한 명문은 '전(典: 크기 새로 약 4cm)'자로, 지난 10월 13일 탁본 작업 때에 이번 조사를 수행한 ㈜서진문화유산 김선덕 대표와 현장 자문위원 박홍국(위덕대) 연구교수가 남쪽 비면의 맨 아랫부분에서 발견했다.

이 글자는 예서체에 가까운 것으로 포항 중성리 비(441년 또는 501년)의 '전서사(典書寫)', 포항 냉수리 비의 '전사인(典事人)', 창녕 진흥왕 척경비(561년)의 '△전(△典)', 황초령 진흥왕순수비(568년)의'△전(△典)',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568년)의 '나부통전(奈夫通典)'과 '급벌참전(及伐斬典)' 등의 예가 있다.

지금까지 감악산 비석을 5차례 답사한 박홍국 교수는 "'전(典)'자가 발견된 곳은 비석과 비좌(받침돌)사이 틈에 흙이 쌓인 뒤 자리 잡은 풀이 일부라도 햇빛과 빗물이 튀어 오르는 것을 막아준 결과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삼국시대 비석 중에서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와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 감악산 비석 등 4기만 비갓(개석)과 4면이 가공된 비신, 비좌를 모두 갖추고 있다"며 "이런 점에서 감악산 비도 진흥왕의 순수비일 가능성이 크며, 크기와 형태로 보아 황초령·마운령 비석보다는 북한산 순수비와 가까워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석재와 관련, 김선덕 대표는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의 경우 비교적 입자가 작은 세립질 화강암인데 비해 감악산 비는 석영, 장석, 흑운모의 입자가 커서 표면 전체가 약 6mm 이상 풍화작용에 의해 박락됐을 정도로 더욱 취약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비좌(받침돌)는 비석 주변의 석재를 사용했지만, 비석 본체를 어디에서 채석했는지 향후 암석학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