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유리병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사람들에겐 쓰레기일지라도 내겐 영롱한 빛을 내는 예쁜 보석들이죠.”

김경균 작가(한국예술원종합학교 미술원 디자인과 교수·58)가 바닷가 쓰레기를 이용한 실험적인 정크 아트 작업을 4년 넘게 하고 있다.

사람들이 무심코 바다에 버린 소주병, 맥주병, 음료수병들. 오랜 세월 파도에 휩쓸리며 병은 깨지고 날카로운 모서리가 뭉툭하게 달아진다. 동글동글 영롱한 빛을 내는 유리들에 작가는 주목했다.
바다 유리병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그는 강릉에서 부산을 왕복하고도 남을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모은 ‘유리알’들로 다양한 예술작품을 만들며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꾸준히 내오고 있다.

작가의 손을 거쳐 예술로 태어난 ‘아름다운 보석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 ‘파도의 기억을 담아’가 12월 2일부터 파주 출판도시 아르디움 갤러리서 열리고 있다. 전시회는 내년 2월 19일까지다.

김 작가에게 바다는 복잡한 서울 생활에 지친 심신을 달래는 위로와 새로운 기운을 주는 안식처다.그래서 그는 지금도 틈만 나면 바다로 간다고 한다.

“어느 날 파도에 밀려온 쓰레기 더미를 치우다 유리병 조각을 발견했어요. 거기에 쓰인 ‘경월주조’란 글자가 거의 40년간 잊힌 기억을 일깨웠죠. 재수를 결심하고 찾은 주문진 겨울 바다에서 강소주를 비우고 바다에 던져버렸던 바로 그 소주병이 내 앞에 돌아와 뭐라고 말을 거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랜 세월 파도에 쓸려 모서리가 뭉툭해진 그 유리 조각은 어딘지 작가 자신을 닮아 있었다고 했다.그렇게 시작된 작가만의 보물찾기 시작됐다. 처음에는 바다 환경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자신을 수행하는 구도의 길이 됐다고 했다.
바다 유리병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김 작가는 “가끔 내가 걸어온 뒤를 돌아보지만, 파도가 지나간 뒤엔 결국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잖아요”라며 “언제나 나의 모든 아픔을 다 받아주는 친구, 그래서 바다가 참 좋다”고 했다.

스튜디오 촬영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유리알 조형물은 대형 설치 작품으로, 예술 포스터, 달력, 티셔츠, 에코백, 머그잔 등으로 새로 태어났다. 또한 유리알 조형물에 친환경 메시지를 담아 <빛의 바다> 라는 그림책으로 엮어 강릉, 통영, 고창 등 전국에서 전시 및 북토크 등을 열며 환경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바다 유리병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강릉 테라로사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유리병 조각을 주워 거대한 거북이 등 바다 생물 모양을 만들어보는 워크숍도 열었다. 김 작가는 “이런 과정을 통해 다음 세대와 소통하면서 환경보호 메시지도 자연스럽게 확산하고 싶었다”라며 “함께 만든 결과물은 아름답지만 어디까지나 쓰레기를 수집하고 재활용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바다 유리병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이번 아르디움 갤러리 전시는 지난 4년 동안 작업한 것들을 총망라하고 정리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지금까지 수집한 유리알을 한 개씩 따로 정밀 촬영하여 1,600페이지가 넘는 책자를 만들고 1,600칸의 거대한 엽서장을 가득 채우는 유리알 백과사전과 아카이브도 구축했다. 그리고 각각 따로 촬영한 유리알 조합을 재구성한 얼굴 포스터 연작도 재미있는 작품이다. 버려진 쓰레기가 우리 인류를 향해 다양한 표정으로 환경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지금까지 모은 유리알을 전부 사용해 만든 폭 3m 크기의 대형 작품 2점은 이번 전시의 메인이다. 하늘, 바다, 땅이 만나는 가장 원초적인 풍경을 재현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파도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바다 유리병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전시회 오픈 첫날엔 멋글씨 작가 강병인과 배일동 명창의 축하 퍼포먼스도 펼쳐졌다. 그리고 전시회 중간중간 별도로 갤러리 토크와 워크숍 등도 개최할 예정이다.
바다 유리병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바다 유리병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김경균 작가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디자인과 교수로 지내고 있다. 강릉시 공공디자인 정책관을 맡고 있다.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과 무사시노미술대학 객원교수를 지냈다.

작가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타마미술대학원에서 비주얼커뮤니케이션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 대통령상 등 국내외 여러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했으며,
디지털 미디어 사회에서의 정보문화라는 주제로
‘인터커뮤니즘’, ‘인포메이션 아키텍처’, ‘페이퍼로드’,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바람’ 등
다수의 심포지엄을 기획했다.

<한일종이교류전>, <음양지와 센카지전>, <페이퍼로드 紙的 想像의 길>,
<한일그래픽디자인 심포니아>, <한일 음식문화 특별전>, <한중일 문화올림픽 100개의 바람, 100인의 바램> 등의 특별전을 기획했다.
타이포스터, 몽유도원도, 유리알 유희 등의 개인전을 서울, 강릉, 베이징, 청두 등에서 개최했다.
‘서울지하철 장애인 안내 시스템’, ‘청계천 유비쿼터스 맵’, ‘디자인 서울 가이드라인’, ‘전라남도 예술섬 프로젝트’, ‘연홍도 티셔츠 미술관 프로젝트’ , ‘가우도 정크아트 프로젝트’ 등 다수의 공공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십인십색: 일본 그래픽 디자이너 10인과의 만남>, <일본 문화의 힘>(공저), <엑스포메이션 서울×도쿄>(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인포메이션 그래픽스>, <정보디자인>, <눈의 모험>, <선의 모험>, <원과 사각형의 모험>, <독서의 신>, <불변의 디자인 룰 150>, <마법의 색채 센스>, <배색사전>, <마법의 디자인>, <애플>등이 있다.

이철민 기자 press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