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롯데에비뉴엘 본점 까르띠에 매장 앞에 대기자들이 늘어섰다. /한경DB
서울 중구 롯데에비뉴엘 본점 까르띠에 매장 앞에 대기자들이 늘어섰다. /한경DB
프랑스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의 '배짱 영업'에 국내 소비자들 항의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까르띠에는 지난 1일 주요 제품 가격을 올리면서 그 전까지 결제가 이뤄져 구매 완료된 기존 주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했습니다. 소비자들은 "높은 가격에 다시 구매하게끔 만드는 꼼수"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명품 관련 포털사이트 카페를 중심으로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까르띠에 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주문 취소당했다"는 글이 속속 올라왔습니다. 그러자 같은 일을 겪었다고 털어놓는 댓글이 많게는 수백 개씩 달렸습니다. 대규모 결제 취소가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까르띠에는 1일 대부분 제품의 가격을 평균 8~10% 올리는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이번 인상으로 까르띠에의 인기 제품 중 하나인 까르띠에 러브팔찌는 920만원에서 995만원으로 가격이 올랐습니다. 산토스 시계(미디엄·스틸)는 905만원에서 965만원으로, 발롱블루 시계(33mm)는 1270만원에서 1360만원으로 각각 인상됐습니다. 머스트탱크(스틸)의 경우 △스몰 424만원→455만원 △라지 443만→476만원 △엑스라지 585만→670만원으로 각각 뛰었습니다.
서울 중구 에비뉴엘본점 까르띠에 매장 앞 모습. /한경DB
서울 중구 에비뉴엘본점 까르띠에 매장 앞 모습. /한경DB
고객들은 까르띠에가 이같은 인상을 하루 남겨둔 시점에 예고도 없이 무더기로 기존 온라인 주문 건에 대해 카드 결제 등을 취소하는 식으로 '주문 철회'를 단행했다는 데 불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즈음부터 일부 매장에선 '오픈런(영업 시작 전부터 줄을 서는 것)'이 벌어지고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주문도 활발해졌습니다.

까르띠에 측도 구매를 부추긴 측면이 있습니다. 까르띠에 VIP(우수고객) 한모 씨(36)는 "자주 가던 매장 직원이 지난달 중순쯤 가격이 오를 예정이니 원하는 품목을 미리 준비해놓겠다면서 구매 의사를 물어본 적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까르띠에 고객 김모 씨(31)도 "명품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VIP발 인상 소식이 미리 퍼졌다"면서 "결국 까르띠에 측이 정보를 흘려 구매를 유도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일부 소비자들은 이번 대규모 결제 취소 사태와 관련해 공동 행동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물건을 받지 못한 미완의 거래지만, 선결제 후 상품을 추후 수령하겠다는 일종의 사전 계약에 해당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민법은 계약 등 해지 조항에서 쌍방이 체결한 계약을 합당한 사유 없이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까르띠에 측은 이와 관련해 "가격 조정으로 본사에서 홈페이지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오류가 발생해 취소 처리된 것"이라며 "홈페이지로 주문한 고객들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디올의 레이디 디올백. /디올 제공
디올의 레이디 디올백. /디올 제공
문제는 이같은 불합리한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까르띠에는 지난 5월에도 시계와 액세서리 등 일부 제품 가격을 최대 15% 올리기로 한 데 앞서 공식적으로 가격이 인상되지 않은 시점부터 값을 올려 받아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 오메가도 올해 6월 가격 인상 전 미리 값을 치르고 물건을 받기 위해 대기를 하던 고객에게 돌연 '추가금'을 내야 제품을 주겠다고 해 고객들을 당황케 했습니다.

앞서 크리스찬 디올 역시 가격 인상을 앞두고 미리 물건 값을 결제한 고객들을 구매 대기예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당초 디올은 매장에 재고가 없어 물건을 사지 못할 경우 미리 결제를 하고 웨이팅(구매 대기)을 걸 수 있도록 해왔습니다. 이 경우 가격이 인상돼도 기존 가격에 제품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해왔지만, 인상 계획이 결정되자 돌연 태도를 바꿔 일방적 결제 취소 조치를 한 겁니다. 디올은 2019년 2월에도 일부 품목 가격을 인상하면서 '완불 웨이팅 고객'에게 차액을 요구해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의 이같은 갑질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불매운동까지 거론되지만 대부분 업체는 고자세를 유지합니다. 명품에 돈을 쓰겠다는 사람이 워낙 많아 아침부터 매장 앞에서 줄을 서는데 기왕이면 오른 값에 팔겠다는 식입니다. 누리꾼들은 "명품 브랜드의 이같은 행태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국 소비자가 봉이냐" 등의 반응을 보이지만, 명품 브랜드들이 쉽게 불합리한 거래를 시정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