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옆자리에 있는듯 없는듯…피아니스트만큼 바쁜 이는 누구?
피아노 연주회에 가면 종종 피아니스트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앉아 있는 사람을 보게 된다. 눈에 띄지 않게 피아니스트 곁을 지키는 사람. 하지만 연주가 시작되면 피아니스트만큼 바쁜 사람.

이 사람의 정체는 ‘페이지 터너’다. 말 그대로 ‘페이지를 넘겨주는 사람’이다. 두 손을 건반 위에 올려놔야 하는 피아니스트를 대신해 악보를 넘겨주는 일을 한다. 국내에선 속칭 ‘넘돌이’나 ‘넘순이’로도 불린다.

페이지 터너의 실력을 가르는 건 악보를 넘기는 타이밍이다.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게 악보를 넘기면 연주 흐름이 끊기는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다. 그래서 페이지 터너는 연주곡을 잘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손의 움직임도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피아니스트 뒤편에 앉아 있다가 왼손으로 악보의 오른쪽 위 모서리를 잡고 재빨리 다음 장을 넘긴다. 악보 넘기는 소리는 크지 않아야 한다.

페이지 터너는 ‘잘해야 본전’인 직업이다. 통상 악보의 한 마디 정도를 남기고 넘기는데, 핵심은 피아니스트와의 호흡이다. 실수로 한 번에 두 장을 넘겨버리거나 악보를 떨어뜨리면 그날 연주회를 망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페이지 터너에게 넘길 때라는 신호를 주는 친절한 피아니스트도 있고, 너무 빨리 넘긴다며 손을 내치는 피아니스트도 있다.

프랑스 영화 ‘페이지 터너’(2007)는 “페이지 터너가 연주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말에서 출발했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주인공 멜라니는 음악학교 시험장에서 심사위원장인 아리안 때문에 연주를 망치고 꿈을 접는다. 아리안 집의 가정교사가 돼 그에게 신뢰를 얻은 멜라니는 아리안의 연주회에서 페이지 터너를 맡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별러온 복수를 완성한다.

페이지 터너는 음악적 지식이 있고 악보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다. 주로 음대생이 아르바이트로 한다. 스승 연주회에 제자가 악보를 넘기기도 한다. 일부 젊은 연주자들은 아이패드에 담긴 전자악보를 직접 터치해 넘긴다. 연주자가 페달을 밟으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자동 페이지 터너’도 있다.

연주회를 여는 데 필요한 건 연주자만이 아니다. 무대 뒤에서 땀 흘리는 수많은 스태프도 있고, 페이지 터너처럼 무대 위에 오르되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조력자도 있다. 다음 피아노 연주회에 가면 페이지 터너와 피아니스트의 호흡을 눈여겨보자. 피아노 연주의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니.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