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립미술관 등 6곳에서 열려…55팀 참가 165점 출품
자연·인간·신화가 공존하는 곳…5년만에 돌아온 제주비엔날레
청보리밭으로 유명한 제주도의 섬 가파도.
홍이현숙 작가는 이곳 해안에 떠밀려온 해양쓰레기들을 모아 가파도의 전시장인 글라스하우스에 차곡차곡 쌓았다.

스티로폼과 그물, 색색의 플라스틱통 등 쌓인 쓰레기 위에는 가파도를 상징하는 청보리씨를 뿌렸다.

악취가 나기 시작하는 해양쓰레기 위에서도 청보리는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홍이현숙 작가의 작품 '가파도로 온 것들'을 두고 일부 관광객들은 냄새가 난다며 민원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악취 역시 작가가 의도한 것으로 작품의 일부다.

가파도를 비롯한 제주 일대에서 제3회 제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2017년 이후 5년 만에 열린 제주비엔날레는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을 주제로 신화와 자연, 생명, 인간의 조화와 공존을 이야기한다.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 등 전통적인 전시공간과 제주국제평화센터, 삼성혈, 가파도 AiR(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미술관옆집 제주까지 6곳에 작품이 설치됐다.

자연·인간·신화가 공존하는 곳…5년만에 돌아온 제주비엔날레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지구 온난화와 기상 이변에 대한 경각심을 뮤직비디오로 풀어낸 김기라 작가의 작품이 관객을 맞는다.

이어 김수자 작가가 반투명 특수 필름으로 미술관의 중정 공간을 에워싼 장소특정적 작품인 '호흡'을 만나게 된다.

필름을 통과한 자연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채로운 빛으로 공간을 물들인다.

부부 작가 그룹인 '알로라 & 칼자디아'는 카리브해에서 지구 온난화로 발생한 허리케인 때문에 파괴된 나무에서 떨어진 꽃을 재활용 폴리염화비닐로 재현한 작품을 미술관 계단에 설치했고, 캐나다 작가 자비에 사는 한국의 바리공주 설화를 바탕으로 조각과 빛, 소리가 결합한 멀티미디어 작품을 출품했다.

미술관 야외 공간에는 최병훈 작가의 '태초의 잔상 2022'가 놓였다.

제주 특유의 돌 쌓기 방식으로 제주 민속신앙 속 제단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의자처럼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강승철 작가는 장애인들도 미술관의 야외조각을 감상할 수 있도록 장애인 주차장에서 야외조각 작품으로 이어지는 길에 도보 점자판과 먹돌형 의자를 설치했다.

두 작가의 작품은 모두 야외공간에 원래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또 다른 주 전시장인 제주현대미술관에는 미디어 작업이 중점적으로 배치됐다.

이탈리아 작가 콰욜라는 자율 주행하는 드론으로 계곡의 풍경을 탐구한 영상 작업 '산책로'를 통해 실제와 인공, 구상과 추상, 옛것과 새것 같은 상반된 개념의 중간을 탐구한다.

윤석남은 제주도 출신 여성 사업가 김만덕을 기리는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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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비엔날레는 위성 전시장들이 특히 흥미롭다.

가파도의 외딴 폐가에는 이탈리아 작가 아그네스 갈리오토의 프레스코화가 그려졌다.

작가는 6개월간 가파도의 자연과 생명을 연구했고 그 결과물을 폐가의 5개 방에 산 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가 얽힌 프레스코화로 그려냈다.

가파도의 작가 레지던시인 가파도 AIR에서는 얼핏 불에 타 뒤틀린 고목 같지만 자세히 보면 플라스틱 비닐 수지로 가공한 심승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제주현대미술관 옆에 있는 미술관옆집 제주에서는 아르헨티나 작가 리크릿 티라바닛의 작업을 소개한다.

제주의 전통 농가 모습을 간직하며 작가 레지던시로도 쓰이는 이곳에서 머물렀던 작가는 밭에서 퇴비를 만들고 공간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작가는 이제 없지만 관람객들은 작가의 흔적을 공유하며 작가의 '지시'에 따라 빚은 막걸리를 맛보고 실크스크린 체험도 할 수 있다.

제주의 고씨, 양씨, 부씨의 시조가 솟아났다는 신화의 공간인 삼성혈 곳곳에도 작품이 놓였다.

신예선은 삼성혈의 야외 숲에 있는 고목들을 명주실로 둘러쌌다.

나무의 식생에 따라 각각 다른 색을 사용한 명주실은 자연광의 변화에 따라 삼성혈의 숲을 또다른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박지혜와 대만 작가 팅통창은 삼성혈 설화를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한 영상 작업을 삼성혈 공간에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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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제주국제평화센터에는 바다와 해녀를 주제로 준초이의 해녀 사진 작업과 노석미의 제주 풍경 그림 등을 볼 수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인간 중심의 개발을 반성하고 생태와 환경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다는 목표 아래 도록을 전자책으로 만들고 디자인물도 최소화하는 등 '제로 웨이스트'를 표방했다.

박남희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은 "제주의 동서남북을 다양하게 다닐 수 있도록 장소성을 배려했다"면서 "전시 디자인보다는 공간을 최대한 살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비엔날레는 내년 2월12일까지 계속된다.

자연·인간·신화가 공존하는 곳…5년만에 돌아온 제주비엔날레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