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내셔널갤러리에서 열린 보겔 컬렉션전에서 허버트 보겔(오른쪽)과 도로시 보겔이 웃고 있다. 내셔널갤러리
1994년 내셔널갤러리에서 열린 보겔 컬렉션전에서 허버트 보겔(오른쪽)과 도로시 보겔이 웃고 있다. 내셔널갤러리
“제가 그림을 좀 모으고 있습니다.”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아, 이 사람 진짜 부자인가 보다” 싶으신 분들이 많겠지요. 그럴 만도 합니다. 우리가 평소 미술관에서 접하는 미술품 대부분이 엄청나게 비싸고, 미술 관련 뉴스에 나오는 작품들도 가격에서 억 소리가 나니까요. 안 좋은 인상을 받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허세를 부리기 위해, 혹은 투기나 탈세 수단으로 그림을 사는 졸부라고요.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꽤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허버트 보겔(1922~2012)과 도로시 보겔(87) 부부를 보시면 이런 생각이 조금은 달라지실 겁니다. 허버트는 우체국 직원, 도로시는 도서관 사서였습니다. 두 사람의 연봉은 총 6000만~7000만원. 자식이 없었던 이들은 평생 작품을 수집하는 데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부족하니 잘 알려지지 않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사 모았습니다. 1962년 두 사람이 결혼한 뒤 2012년 허버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 동안요.

이들은 총 4782점의 작품을 함께 모았습니다. 그런데 작품을 구입할 때만 해도 무명이었던 작가들이 하나둘씩 거장으로 인정받으면서 작품값도 엄청나게 뛰었습니다. 2012년 포브스는 이들이 모은 작품 총 가치가 최소 수십억 달러(수천억 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는데, 10년 뒤인 지금에는 가격이 더 올랐을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작품을 팔지 않고 미술관에 기증해 버렸습니다. “집에 작품 놓을 데도 없고,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면서요.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수집가 부부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둘이 합쳐 연봉 7000만원, ‘짠내 컬렉터’ 부부의 노하우
1962년 보겔 부부의 결혼식 사진.
1962년 보겔 부부의 결혼식 사진.
허버트는 뉴욕 할렘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우체국에 들어가 우편물을 분류하는 일을 했습니다. 도로시는 도서관학을 전공하고 브루클린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둘은 1960년 펜실베이니아의 한 리조트에서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1962년 이들은 결혼했고, 워싱턴의 내셔널갤러리로 신혼여행을 갔다 온 뒤 뉴욕의 침실 하나짜리 작은 월셋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 신혼집에서 부부는 50년 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허버트의 연봉은 가장 높았을 때를 기준으로 2만5000달러(약 3300만원). 이것도 세전 기준입니다. 도로시의 연봉은 알려진 적이 없습니다만, 남편과 큰 차이 없었다는 게 중론입니다. 둘이 합쳐서 대략 연봉 7000만원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죠. 물가 비싼 뉴욕에서 미술품을 수집하기엔 불가능에 가까운 수입입니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부부의 열정만큼은 대단했습니다. 허버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긴 했지만 미술에 관심이 아주 많아서 틈틈이 독학으로 미술사를 공부했습니다. 퇴근한 뒤에는 작품을 직접 그리며 화가를 꿈꿨고, 작가 친구들도 많았죠. 도로시는 결혼 전까지 미술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신혼여행지인 내셔널갤러리에서 남편에게 여러 설명을 들은 뒤 미술에 푹 빠졌습니다.

‘미술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부부는 미술품을 본격 수집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들은 자식이 없었고, 여행을 가거나 외식을 하는 일도 거의 없었고, 차도 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유명 작가들의 대표작을 사기엔 돈이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무명 신진 작가의 작품을 주로 사들였습니다.
존 체임벌린의 무제(1962). 부부는 체임벌린이 유명 작가가 되기 전 이 작품을 구입했다. 이 구입을 두고 훗날 많은 큐레이터와 미술계 전문가들은 보겔 부부의 뛰어난 안목에 찬사를 보냈다. 지금 이 작품은 그들의 신혼여행지였던 워싱턴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돼 있다.
존 체임벌린의 무제(1962). 부부는 체임벌린이 유명 작가가 되기 전 이 작품을 구입했다. 이 구입을 두고 훗날 많은 큐레이터와 미술계 전문가들은 보겔 부부의 뛰어난 안목에 찬사를 보냈다. 지금 이 작품은 그들의 신혼여행지였던 워싱턴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돼 있다.
‘가심비’(가격 대비 만족도) 높은 작품을 찾기 위해 이들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뉴욕의 갤러리를 샅샅이 훑었습니다. 부부가 가장 먼저 구입한 작품은 존 체임벌린(1927~2011)의 ‘무제’(1962)입니다.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그는 훗날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거장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이렇게 발굴한 작가 중에선 솔 르윗(1928~2007)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개념미술 거장인 그는 1965년만 해도 작품을 하나도 판 적 없는 무명 작가였습니다. 부부는 르윗의 첫 고객이 돼줬고, 이들은 점점 친해졌습니다. 허버트와 르윗은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전화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부부의 집 크기에 맞춰 르윗이 작품을 직접 조정해준 적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부부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작품을 사 줬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됐지요.
솔 르윗의 '검은색 바닥 구조물'(1965). 보겔 부부는 이 작품을 구매해 르윗의 '첫 고객' 이 됐다. 르윗은 오토바이를 타고 부부의 집으로 직접 작품을 배송해 줬다. 지금 이 작품은 내셔널갤러리가 소장 중이다.
솔 르윗의 '검은색 바닥 구조물'(1965). 보겔 부부는 이 작품을 구매해 르윗의 '첫 고객' 이 됐다. 르윗은 오토바이를 타고 부부의 집으로 직접 작품을 배송해 줬다. 지금 이 작품은 내셔널갤러리가 소장 중이다.
부부는 작가들에게 작품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작가들도 보겔 부부의 컬렉션에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어떤 작품을 추가하면 좋을지 이야기해 줬죠. 작가들이 보겔 부부에게 특별히 저렴한 가격으로 작품을 판매하거나 선물한 적도 많았습니다. 작품을 살 때는 반드시 갤러리를 통해야 하고 이런 식의 ‘직거래’는 금기시하는 게 미술계 관행입니다만, 보겔 부부가 작품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뻔히 보이는 데다 절대로 작품을 되팔지 않으니 미술계 사람들도 별말을 보태진 않았습니다.
“집이 너무 좁아” 미술품 전부 기부
보겔 부부가 평생을 함께한 뉴욕 아파트에서 찍은 사진.
보겔 부부가 평생을 함께한 뉴욕 아파트에서 찍은 사진.
부부가 작품을 볼 때 예술성이나 가격 말고도 중시한 게 있었습니다. “지하철이나 택시로 운반할 수 있고, 아파트에 설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수집품이 2000점을 넘기다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벽과 바닥, 화장실과 침대 밑까지 작품을 놓는 건 물론 소파를 치우고 옷장에 작품을 넣어도 공간이 모자라게 된 겁니다. 부부가 작품에 걸려 넘어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네요.

작품을 기부하기로 마음먹은 부부. 고민 끝에 1990년 신혼여행지인 내셔널갤러리에 작품을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부부에게 의미가 깊은 장소인데다 입장료가 없어서 더 많은 사람과 컬렉션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들이 내건 조건은 한 가지. “절대 작품을 팔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1992년 보겔 부부의 아파트에서 작품을 포장해 워싱턴 내셔널갤러리로 보내는 모습.
1992년 보겔 부부의 아파트에서 작품을 포장해 워싱턴 내셔널갤러리로 보내는 모습.
미술관은 순수하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차원에서 부부에게 소정의 연금을 지급합니다. 그런데 이 부부, 연금을 받아서 작품을 사 모은 뒤 기증하기를 반복합니다. 수천 점의 작품이 계속 들어옵니다. 그러다 보니 내셔널갤러리에도 작품을 보관하고 전시할 공간이 부족해졌습니다. 미술관은 “미국 전역에 작품을 기증하자”고 제안했고, 부부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2012년 허버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보겔 부부는 뉴욕의 낡은 아파트에서 소박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 두 번씩 자신들의 ‘자식 같은’ 컬렉션을 보러 워싱턴 내셔널갤러리를 방문했지요. 오늘날 부부는 ‘이 시대 가장 존경받는 수집가’로 불립니다. 록펠러나 구겐하임, 폴 게티 등 미국을 대표하는 부자 컬렉터들도 얻지 못한 별명이죠. 채민진 아트 어드바이저는 “진정한 컬렉터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미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라는 걸 명확히 보여준다”고 정리했습니다.
재혼한 아내 사진 뉴욕 한복판에…부동산 재벌의 ‘막장 복수’
세상사가 늘 그렇듯 이렇게 동화같이 행복한 컬렉터 부부만 있는 건 아닙니다. 미술품 경매시장에는 ‘3D의 법칙’이란 게 있습니다. 이런 얘깁니다. “미술시장에 A급 매물이 쏟아져 나오는 경우는 세 가지다. 수집가가 사망해 상속세 등의 문제로 컬렉션을 판매하는 경우(Death, 죽음), 수집가가 망해서 작품을 팔아야 할 때(Debt, 빚), 부부가 갈라졌을 때(Divorce, 이혼).”

그도 그럴 것이 미술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웬만해선 작품을 팔지 않습니다. 수집가들의 작품에 대한 애착은 보통이 아닙니다. 급전이 필요해도 웬만하면 작품을 팔지 않으려고 하죠. 현실적인 이유도 많습니다. 거장들의 작품 가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오르기만 하는데, 팔면 손해입니다. 주식이나 부동산에 비해 급하게 처분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고, 급하게 내놓는 과정에서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있고요. 그래서 정말 피치 못할 ‘3D’ 상황에만 작품을 팔게 되는 겁니다.

수집가 부부가 이혼할 경우 문제가 훨씬 지저분해집니다. 가격을 기준으로 해서 작품을 정확히 반씩 나누기도 어렵고, 부부가 그걸 원하지도 않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이것만큼은 내가 반드시 가져가야겠다’ 싶은 작품들이 있거든요. 협상을 엄청나게 잘하고 서로를 잘 설득한다면 그럭저럭 나눌 수야 있겠지만, 그게 되면 애초에 이혼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솔로몬의 판결처럼 둘로 쭉 찢을 수도 없고요. 그래서 그냥 경매에서 팔아치운 뒤 돈만 나누어 가지는 부부들이 대부분입니다.
해리 매클로(왼쪽)과 린다 버그가 부부였던 시절.
해리 매클로(왼쪽)과 린다 버그가 부부였던 시절.
미국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 해리 매클로(85)와 전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명예 이사인 린다 버그(81)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두 사람은 50년 넘게 같이 살며 열정적으로 미술품을 수집했죠. 하지만 2016년 해리가 패트리샤 랜도(65)와 바람이 나면서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2018년 린다는 이혼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미술품을 팔아 돈을 반으로 나누라고 판결했습니다.

해리는 그림을 지키고 돈으로 위자료를 주고 싶었겠지만, 그런 소망을 린다가 이루게 해 줄 리 없습니다. 해리의 ‘뒤끝’이 작렬합니다. 뉴욕 맨해튼의 핵심지역 미드타운, 그중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싼 파크애비뉴에는 뉴욕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초호화 콘도 ‘432 파크애비뉴’라는 건물이 있는데요. 지난 2019년 이곳의 부속 건물에 폭이 7.3m, 높이가 12.8m에 달하는 두 사람의 사진이 걸렸습니다. 바로 해리와 그의 재혼한 아내 랜도의 사진이었습니다.
뉴욕 한복판에 걸린 해리와 린다의 사진.
뉴욕 한복판에 걸린 해리와 린다의 사진.
“재혼을 기념해 내 사랑을 만인에게 증명했다”는 게 해리의 설명인데…. 누가 봐도, 속된 말로 ‘엿 먹어봐라’는 거겠죠. 당시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들도 “자신이 행복하게 재혼했다는 걸 자랑하는 일종의 복수”라고 평가했습니다.

어떻든 경매 회사와 큰손 컬렉터들에게는 신나는 일입니다. 덕분에 피카소, 앤디 워홀, 마크 로스코 등 서양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 65점이 경매시장에 쏟아졌습니다. 경매 주관사로는 소더비가 선정됐고요. 소더비는 지난해 11월과 지난 5월 두 차례에 걸쳐 작품들을 경매에 부쳤는데, 총 낙찰가가 9억3300만달러(약 1조 2400억원)에 달합니다.

이 두 극단적인 사례를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작품을 모으고 나누는데도 참 다양한 방식이 있구나” 싶습니다. 온갖 부귀영화 다 누리고 맘대로 사는 해리의 삶도 재밌기야 하겠죠. 돈이 많은 건 당연히 부럽고요. 하지만 제 눈에는 평생 넉넉지 않게 살면서도 아내와 행복하게 취미를 즐긴 허버트의 삶이 더 좋아 보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월세만 50년 살던 부부, '수천억원어치 미술품' 기증한 이유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이번 기사는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컬렉팅 듀오>(채민진 저, 아르테카)에서 상당 부분을 참조했습니다. 이 밖에 뉴욕타임스의 2012년 허버트 보겔 부고 기사와 같은 해 포브스 기사를 함께 참조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토요일마다 연재되는 기사로, 이번 기사는 18회째입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토요일마다 연재되는 기사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