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박유경 소설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惡에 대한 이야기"
“태풍이 들이닥치면 ‘위험하니 집에 있어라’, ‘밖에 나가지 마라’ 이렇게들 말하잖아요. 그런데 집 안이 가장 안전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얼마 전 만난 소설가 박유경(사진)은 기자에게 대뜸 이런 질문부터 던졌다. “최근 내놓은 두 번째 장편소설 <바비와 루사>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면서.

소설은 남해의 한 섬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 사건을 다룬다. 마을을 휩쓸어버린 강력한 태풍처럼 가정폭력은 피해자의 삶을 뒤흔들어 놓는다. 제목에 있는 ‘바비’와 ‘루사’는 각각 2020년과 2002년에 한반도를 덮친 태풍 이름이다. 소설은 여성과 어린이를 위협하는 가정폭력을 다루면서도 인간의 연대와 공감은 놓치지 않았다.

소설은 폭력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불우한 유년 시절’ 같은 변명을 악인에게 허용하지 않는다. 박 작가는 “가장 가까이 있는 악에 대해 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설 속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는 사랑과 증오가 뒤섞여 있다. 가족은 가깝고도 먼 존재다. “악인에 대해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선을 그으면 마음은 편하죠. 나는 선하고 평범한 무리에 머무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는 사랑과 증오가 뒤섞여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에서 선과 악의 경계를 분명하게 가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죠.”

박 작가의 전작이자 2017년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여흥상사>도 친구의 죽음에 휘말린 세 사람을 통해 선악의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였다.

선과 악의 문제를 골몰해온 박 작가가 아동학대 이야기를 쓰게 된 데에는 코로나19도 영향을 미쳤다. 박 작가는 “2년 전 팬데믹이 시작됐을 때 세 살, 일곱 살이던 두 아이와 함께 집에 웅크리고 있었다”며 “자가격리할 집조차 마땅치 않은 이들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소설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폭력을 재현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 되진 않을까’ 하는 고민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박 작가는 “내용상 불가피하게 폭행 장면을 묘사할 때도 폭력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박 작가는 “폭력에 맞서고, 폭력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문학에 있다는 믿음을 <바비와 루사>에 담았다”고 했다.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문학은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다. 소설에는 태풍으로 인해 뿌리째 뽑힌 은행나무가 나온다. 소설 속 ‘지 형사’는 아동학대 피해자인 ‘현서’가 그 나무를 보면서 스스로를 뿌리가 뜯겨나가버린 사람으로 생각할까봐 염려한다. 책에는 이렇게 표현했다. “뿌리가 뽑힌 은행나무를 손쉽게 치워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뿌리가 뽑힌 자리를 가만히 응시하고 왜 아프게 되었을까 골똘히 고민하는 사람이 있었다. 지 형사는 현서가 절망보다 그런 귀한 마음을 품기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바랐다.”

밀리의 서재에 먼저 연재됐던 소설이지만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 출판사 편집자 출신인 박 작가는 “문장 퇴고를 얼마나 지독하게 했는지 빨간펜 두 개의 잉크가 다 닳았다”고 했다. 박 작가는 내년 초에는 현실 속 젊은 여성의 삶과 목소리를 모은 단편소설집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는 “세 번째 장편소설은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며 “어쩌면 선악보다 더 알 수 없는, 불가해한 감정은 사랑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