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피파레티의 ‘무제’(왼쪽·2021)와 황호섭의 ‘무제’(2021).
베르나르 피파레티의 ‘무제’(왼쪽·2021)와 황호섭의 ‘무제’(2021).
프랑스 현대미술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장 프루니에(1922~2006)가 설립한 장 프루니에 화랑이다. 이곳은 1960~1980년대 프랑스 최고 화랑으로 평가받았다. 탁월한 안목을 가진 프루니에는 1970년께 프랑스 남부에서 일어난 미술운동 ‘쉬포르 쉬르파스’에 큰 영향을 끼치는 등 미술계의 파워맨이었다. 그가 사망했을 때 ‘르몽드’ 등 프랑스 언론은 “위대한 갤러리스트가 떠났다”고 애도했다.

서울 보광동 가나아트 보광에서 열리고 있는 ‘Rsonner’는 프루니에가 아꼈던 1955년생 동갑내기 작가들의 2인전이다. 주인공은 한국의 황호섭과 이탈리아의 베르나르 피파레티. 전시 제목은 프랑스어로 ‘함께 울린다’는 뜻이다. 가나아트는 “서로 다른 듯 닮은 두 작가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두 화가의 작품이 각각 10여 점 걸려 있다. 황 화백은 1984년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 졸업전에서 프루니에의 눈에 들면서 현지 예술계의 주요 작가 중 한 명으로 발돋움했다. 작품성을 높이 산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 윤영달 크라운해태홀딩스 회장 등 여러 명사가 그를 지원했다. 한국 화가들을 세계에 알리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지만, 정작 본인은 화가 인생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낸 탓에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황 화백은 2017년 귀국 후에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이번에 선보이는 추상화는 캔버스에 물감 방울을 떨군 뒤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물로 씻어내기를 반복하는 식으로 만든 작품들이다. 이렇게 나온 은하수 같은 모양을 통해 우주의 근원적인 생명력을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피파레티는 프랑스 니스의 앙리 마티스 미술관과 생테티엔 시립 현대미술관 등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던 유명 작가다. 마티스와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등 주요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기하학적인 추상화를 그린다.

지난 40여년간 친구이자 동료였던 두 작가는 황 화백의 귀국 이후 서로 연락만 주고받다가 이정용 가나아트갤러리 대표가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5년 만에 재회했다. 전시는 오는 2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