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특별전 관람객들이 25일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 등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특별전 관람객들이 25일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 등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세심한 붓 터치가 인상적인 그림이 자그마한 감상실 한쪽을 차지했다. 17세기 유럽 최고 화가였던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필레몬과 바우케스’다. 은은한 조명은 두 눈을 감싸고, 귓가엔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맴돈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과 음악 거장의 만남을 눈과 귀로 느끼려는 사람들은 감상실 앞에 긴 줄을 만들었다. 유럽에 있는 유명 박물관 얘기가 아니다.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5일 개막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의 한 장면이다.

이날 기획전시실 앞에는 개막 시간(낮 12시) 30분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600여 년간 수집한 최고의 예술품을 만나려는 미술과 역사 애호가들이었다. 루벤스와 디에고 벨라스케스 등 거장의 그림과 화려한 갑옷, 공예품 앞자리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관람객 홍소연 씨(46)는 “몇 년 전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에 갔을 때의 감동이 되살아났다”고 했다. 또 다른 관람객은 “이런 작품들을 한국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바로크 미술 거장들 '名作의 향연'…"이걸 한국에서 볼 줄이야"

바로크 대표 그림과 음악의 만남

전시장에 걸린 작품은 총 96점. 모두 빈미술사박물관에서 공수해 왔다. 양승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는 “이 많은 작품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모두 미술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관람객들이 서양사와 바로크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미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고 강조했다.

전시실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관람객의 이해와 몰입을 돕기 위한 대표적인 장치다. 멜론의 매장 음악 서비스인 비즈멜론 등 여러 기업·기관의 협찬을 받아 해당 공간 작품과 어울리는 14곡을 선정했다. 막시밀리안 1세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컬렉션이 놓인 곳에는 당시 궁정 악장(樂長)이었던 하인리히 이자크의 곡이 나오고,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초상화 앞에선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이 테레지아 여왕에게 헌정한 곡이 흘러나오는 식이다.

15~16세기 유럽 미술의 ‘대세’였던 플랑드르 회화의 정수를 모은 작은 방 한가운데엔 꽃병 하나를 놨다. 생화(生花)와 조화(造花)를 섞어 각기 다른 계절에 피는 꽃들을 한 병에 꽂았다. 뒤쪽엔 ‘정물화 대가’ 얀 브뤼헐 1세의 걸작 ‘꽃다발을 꽂은 파란 꽃병’이 보인다. 이현주 홍보관은 “브뤼헐은 다른 계절에 피는 꽃, 벌레 먹은 꽃 등을 한데 그려 생로병사와 세월의 허무함을 표현했다”며 “꽃병을 통해 이런 작품 주제를 설명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만난 관람객들은 “미술품들이 워낙 좋긴 했지만 유럽의 고풍스러운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전시장 분위기도 인상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감상에 집중하기 좋으면서도 감각적인 벽면 색, 알맞은 조명 밝기 덕분이라고 했다. 높이 2.7m에 달하는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 앞에 마련된 긴 소파도 호평받았다. 김석환 씨(38)는 “해외 유명 박물관처럼 앉아서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18세기 빈 풍경

전시실 곳곳에는 창문처럼 생긴 앞뒤로 뚫린 창이 배치됐다. 페르디난트 2세 대공(1529~1595)이 수집한 갑옷 사이에도 이런 ‘창’이 있다. 창 너머로는 건너편 벽에 걸린 갑옷 주인인 페르디난트 2세의 초상화가 보인다.

테레지아 여왕 시대인 18세기 수집품을 모은 공간은 그가 건축한 오스트리아 쇤부른 궁전을 콘셉트로 꾸몄다. 이 공간에 난 창 너머로는 당시 빈의 모습을 그린 풍경화가 보인다. 당시 최고의 풍경화가였던 베르나르도 벨로토의 작품이다.

양승미 학예사는 “벨로토의 그림 이미지를 건너편 벽에 프로젝터로 상영했다”며 “테레지아 여왕이 생전 봤던 풍경도 이랬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창이 난 벽 중 상당수는 직전 전시인 이건희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썼던 구조물들을 새로 칠하고 고쳐 썼다. 윤상덕 전시과장은 “요즘 미술관과 박물관의 화두는 환경 보호”라며 “지속 가능한 전시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 내용이 방대한 만큼 마지막 방에는 ‘복습’을 위한 공간이 있다. 설치된 태블릿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을 골라 ‘나만의 합스부르크 컬렉션’을 만들 수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전시 내용을 안내하는 공간도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1일까지.

성수영/이선아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