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유적도첩 야연사준도.
북관유적도첩 야연사준도.
전국 대학에 박물관이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건 1967년이다. 교육부(당시 문교부)가 “종합대에는 면적 200㎡ 이상 박물관이 있어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립된 박물관들은 지역 유물 발굴과 연구의 중심이 됐다. 1990년대 중반 이 조항은 삭제됐고, 문화재 발굴을 민간업체들이 주도하면서 거의 모든 대학 박물관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대학 박물관들은 1년에 한 번도 전시회를 열지 않는 ‘무늬만 박물관’이 됐다.

고려대 박물관은 예외다. 동궐도(국보), 혼천시계(국보) 등 지정문화재 8점을 포함해 수준 높은 소장품을 여럿 갖고 있다. 그 덕분에 매년 한 번 이상 특별전을 한다.

고려대 박물관이 ‘술’을 주제로 특별전을 열고 있다. 제목은 ‘나를 내려 사람에 취하다’이다. 술과 연관된 소장 그림, 도자기 등 유물을 70여 점 내놨다. 박유민 고려대 박물관 학예사는 “코로나19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사람 간 만남의 중요성을 조명하기 위해 술을 주제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전시 유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조선 세종 때 김종서 장군의 회식 장면을 그린 ‘북관유적도첩 야연사준도’다. 김 장군이 영토를 두만강까지 확장한 뒤 도순문찰리사(일종의 도지사)로 일하던 시절, 연회 중 갑자기 화살이 날아와 술독을 맞췄는데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행사를 진행했다는 일화를 그린 작품이다. 유물 옆 모니터에선 이를 한눈에 보여주는 그래픽 영상이 흐른다.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술독에 꽂히는데 김 장군만 놀라지 않고 호쾌하게 술을 들이켜는 애니메이션이다.

‘중묘조서연관사연도’는 1535년 왕세자이던 인종이 경복궁에서 연회를 여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술을 마시다가 몇몇 관리가 취해 부축받으며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흥미롭다. 정약용의 ‘매화도’, 과음을 경계하는 의미를 담아 술을 너무 많이 따르면 흘러내리게 만든 잔 ‘계영배’ 등도 전시돼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14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