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 시카고미술관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 시카고미술관
지금 보시는 이 그림은 미국의 ‘국민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대표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waks)’(1942)입니다. 텅 빈 밤거리, 홀로 불을 밝힌 다이너(diner·심야에도 영업하는 미국식 간이식당)의 모습을 그렸죠. 얼핏 보면 그저 식당을 그렸을 뿐이지만 계속 보다 보면 그림 속 인물들의 고독이 가슴에 스며듭니다. 심야 특유의 적막한 분위기, 커피잔을 앞에 놓고 침묵에 잠긴 손님들, 무심해 보이는 직원의 동작 등이 색·구도 등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덕분이죠.

이 작품에 나오는 식당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호퍼가 평소 눈여겨보던 여러 식당에서 조금씩 특징을 따와 그렸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그중 가장 유력한 후보가 미국 뉴욕 웨스트빌리지 그리니치에서 2017년까지 영업하던 ‘나이트호크’입니다. 아쉽게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지만요.
그림 속 식당 자리에 들어선 한식당 '제주 누들 바'. 제주누들바 SNS
그림 속 식당 자리에 들어선 한식당 '제주 누들 바'. 제주누들바 SNS
그런데 최근 놀라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나이트호크가 폐업한 후 그 자리에 들어선 식당이, 놀랍게도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한국식 라면 식당이라더군요. 일본 라멘 아니고 라면 말입니다. ‘김밥□□’처럼 저렴한 분식집은 아니고, 삼겹살·백김치·깻잎·고추장 등을 토핑으로 얹은 한국판 라면을 파는 퓨전 한식 레스토랑입니다. 꽤 인기가 많은지, 2018년부터 3년 연속 미쉐린가이드에서 별을 받았다고 하네요. 미국 국민 작가가 그린 식당이 이제는 라면집이라니 정말 세월이 무상합니다.

마침 또 공연·전시업계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립니다. 국내에도 호퍼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때까지 그의 그림이 온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립미술관이 내년 호퍼의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더군요. 이참에 오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이 그림을 그린 주인공, 에드워드 호퍼와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해 보겠습니다.
작품값 1000억 넘는 미국 국민 화가…비결은
호퍼의 1929년작 '촙 수이'. 밝은 빛과 식당 특유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는 깊은 고독이 느껴진다. 식당에 앉아있는 초록색 옷의 여성을 비롯해 모든 등장인물들은 주변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고독을 곱씹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18년 열린 경매 프리뷰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한경DB
호퍼의 1929년작 '촙 수이'. 밝은 빛과 식당 특유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는 깊은 고독이 느껴진다. 식당에 앉아있는 초록색 옷의 여성을 비롯해 모든 등장인물들은 주변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고독을 곱씹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18년 열린 경매 프리뷰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한경DB
호퍼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명입니다. ‘예술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화가’라는 별명도 있죠. 수많은 이들이 호퍼의 그림을 주제로 소설과 시를 쓰고 영화를 찍었습니다. 뉴욕시 오페라단은 2016년 그를 주제로 한 오페라 공연을 펼쳤고, 2013년 개봉한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아예 영화 속에서 호퍼의 그림 13점과 거의 똑같은 장면들을 연출하기도 했죠. SSG 등 국내 기업들도 호퍼의 그림을 모티브로 한 광고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호퍼의 그림을 원하는 부자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림 한 점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격은 그렇다 치더라도 매물이 거의 없거든요. 예를 들면 파블로 피카소는 생전 1만점 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호퍼는 고작 366개의 작품만 남겼습니다. 수집가들은 이렇게나 희소성과 가치가 큰 작품을 웬만하면 팔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장에서 거래된 건 2018년 경매에 나온 ‘촙 수이(Chop Suey)’(1929)인데, 낙찰가가 9200만달러(약 1315억원)에 달했습니다. 지금 팔면 아마 더 비쌀 겁니다.

호퍼가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을 누구보다도 그림에 잘 풀어낸 작가기 때문입니다. 그 비결이 뭘까요. 요약하면 ‘엄청나게 잘 그린 덕분’인데요. 이렇게만 말씀드리면 화가 나실 테니,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의 도움을 받아 자세히 뜯어보겠습니다.
호퍼의 '아침 태양'.
호퍼의 '아침 태양'.
이 그림은 호퍼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침 태양’입니다. 한 여자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호텔 방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호퍼 특유의 고독한 분위기가 짙게 배어 나오죠.
호퍼가 '아침 태양'을 그리기 전 했던 스케치.
호퍼가 '아침 태양'을 그리기 전 했던 스케치.
이런 분위기는 철저하게 계산된 호퍼의 연출 덕분이라는 게 이 관장의 설명입니다. 먼저 이 그림에는 직선이 많이 사용됐습니다. 실내 벽과 침대, 창밖 건물, 창문과 벽에 비친 햇빛까지 모두 직선이죠. 반면 여자의 몸은 홀로 곡선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머리 모양과 몸을 둥글게 만 자세까지요. 직선은 긴장감을 형성하고, 곡선은 편안한 느낌을 주죠. 직선으로 된 세상 속 여자의 곡선을 통해, 세상 속 한 인간의 고독한 내면을 부각한 겁니다.

이 관장은 “빛과 창문, 빛이 벽에 닿는 부분과 그늘진 곳, 햇빛을 받는 여자의 몸 앞쪽과 그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대비를 눈여겨보시라”고 말합니다.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를 통해 인간이 느끼는 고독의 크기가 그만큼 크고 깊다는 걸 표현했다는 겁니다.

이 설명을 적다 보니 호퍼의 인기 비결이 하나 더 떠올랐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부분의 미술 작품들은 책이나 모니터보다 실제로 보는 게 훨씬 좋습니다. 평평하고 단조로운 모니터 속 이미지와 달리 실제 작품은 작품 크기나 질감, 주변 환경과의 조화 덕분에 훨씬 깊은 인상을 주거든요. 그런데 호퍼는 구성과 색감 등 이미지 자체의 매력이 워낙 탁월해서, ‘모니터로 봐도 좋은 작가’입니다. 젊은 세대에서도 호퍼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중하고 치밀한 예술가
호퍼의 1940년작 '사무실의 밤'. 묘한 분위기의 이 그림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준다. 푸른색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은 남성을 바라보고 있고, 남성은 재킷도 벗지 않은 채 일에 열중하고 있다. 서류 몇 장은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날려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남자는 이를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이 때문에 일부 평론가들은 '남자가 의도적으로 여성의 관심을 무시하고 있다'는 해석을 제기한다.
호퍼의 1940년작 '사무실의 밤'. 묘한 분위기의 이 그림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준다. 푸른색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은 남성을 바라보고 있고, 남성은 재킷도 벗지 않은 채 일에 열중하고 있다. 서류 몇 장은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날려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남자는 이를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이 때문에 일부 평론가들은 '남자가 의도적으로 여성의 관심을 무시하고 있다'는 해석을 제기한다.
호퍼는 정말로 그리기 어려운 주제를 다뤘습니다. 기쁨, 슬픔, 공포는 표정에 바로 드러나지만, 고독과 외로움, 후회, 지루함 등 미묘한 감정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리기 어렵습니다. 그림의 배경도 사무실, 아파트, 도로 등으로 극히 평범했습니다. “(맘대로 그리면 되는) 용보다 (누구나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개를 그리는 게 어렵다”는 말이 있죠. 하지만 호퍼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호퍼가 남긴 '사무실의 밤' 습작.
호퍼가 남긴 '사무실의 밤' 습작.
그는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작품을 그리기 전에는 정말 치밀하게 구성을 짰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오랫동안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게 머릿속에 그려질 때까지 그림을 시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죠. 예비 스케치도 수없이 많이 남겼습니다. 1939년 그린 ‘뉴욕 극장(The New York Movie)’을 그리기 전에는 극장 내부와 생각에 잠긴 안내원의 모습 등을 수없이 다르게 그려봤죠. 남아있는 스케치만도 53개가 넘습니다.

이쯤 되면 ‘호퍼는 도대체 얼마나 고독했길래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의외로 호퍼의 삶은 딱히 슬프거나 고독하지 않았고, 오히려 꽤 행복한 편이었습니다. 미국 뉴욕주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으며 자랐습니다. 뉴욕예술학교를 나온 뒤 1905년부터 광고회사 등에서 잡지 표지나 삽화 등을 그렸죠. 호퍼는 하루빨리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화가가 되고 싶어 했지만, 이런 경력 덕분에 보는 이를 빠르게 사로잡는 감각과 구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생전의 에드워드 호퍼.
생전의 에드워드 호퍼.
미술계에서 서서히 이름을 알려가던 그는 마흔한 살이던 1924년 예술학교 동창인 조세핀 니비슨과 결혼하면서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합니다. 둘의 성격은 정반대였습니다. 호퍼는 말이 없고 신중한 성격이었고, 니비슨은 급하고 화끈했습니다. 니비슨은 “남편과 대화하는 건 우물에 돌 던지는 거랑 비슷해. 우물에 돌을 던지면 쿵 소리라도 나는데 호퍼는 그런 소리도 없어”라고 불평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둘의 사이는 좋았습니다. 니비슨은 평생 호퍼 곁을 지켰고, 작품에 대한 조언을 비롯해 여러 도움을 주면서 남편이 거장으로 자리매김하는 걸 도왔습니다. 평론가나 고객들에게 작품을 알리고 소개하는 역할도 했고요. 여러 차례 그림의 모델이 돼주기도 했습니다. 니비슨의 활발한 성격은 예술가치고는 지나치게 신중하고 치밀했던 호퍼에게 좋은 자극이 됐을 겁니다.
호퍼가 세상을 뜨기 1년 전 남긴 작품 '두 희극배우'. 자신과 아내를 모티브로 그렸다.  소더비
호퍼가 세상을 뜨기 1년 전 남긴 작품 '두 희극배우'. 자신과 아내를 모티브로 그렸다. 소더비
호퍼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죽음을 예감하고 그린 최후의 작품 ‘두 희극배우’(1965)는 이들의 관계를 상징하는 작품입니다. 광대 복장을 한 남녀가 손을 잡고 무대 인사를 하는 그림인데요. 니비슨은 호퍼가 84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뒤 1년도 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납니다. 둘은 같은 곳에 묻혔죠. 그림 속 부부는 이렇게 세상에 작별인사하는 듯합니다. “이 한 세상 지지고 볶으며 재미있게 살다 갑니다. 저희가 함께 만든 작품들을 맘껏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호퍼 그림, 내년 서울시립미술관에 올 듯
호퍼의 1951년작 '바닷가의 방'. 활짝 열린 방문 너머 또 다른 방이 있어야 할 자리에 검푸른 대양이 넘실댄다. 바깥의 햇빛이 그대로 내리쬐는 방은 부자연스럽게 밝아 조명이 켜진 텅 빈 무대처럼 어색하고 외로운 느낌을 준다. 황량한 방과 벽 뒤 거실 풍경에서는 인간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바다에서도 생명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호퍼가 매사추세츠주 남동부 코드 곶의 절벽 위에 있던 자신의 작업실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처럼 이 그림에도 고독이 녹아있다.
호퍼의 1951년작 '바닷가의 방'. 활짝 열린 방문 너머 또 다른 방이 있어야 할 자리에 검푸른 대양이 넘실댄다. 바깥의 햇빛이 그대로 내리쬐는 방은 부자연스럽게 밝아 조명이 켜진 텅 빈 무대처럼 어색하고 외로운 느낌을 준다. 황량한 방과 벽 뒤 거실 풍경에서는 인간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바다에서도 생명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호퍼가 매사추세츠주 남동부 코드 곶의 절벽 위에 있던 자신의 작업실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처럼 이 그림에도 고독이 녹아있다.
호퍼는 한국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층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그림이 워낙 좋아서 인스타그램에 ‘인증샷’ 올리기도 좋고요. 전시를 열기만 하면 ‘히트’를 칠 게 뻔한 상황이었죠. 그런데도 호퍼의 전시는 국내에서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작품 수가 많지 않고 대여료와 보험료 등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내년 서울시립미술관에 호퍼가 온다고 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아직 공식 발표 단계는 아니다”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내년 이맘때쯤 전시가 열리는 게 확실시됩니다. 호퍼의 그림을 국내에서 볼 수 있다니 기대가 큽니다. 다만 전시 티켓은 평소 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다른 전시들보다 꽤 비쌀 듯하니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과 고고학 등 과거 사람들이 남긴 흥미로운 것들에 대해 다루는 코너입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토요일마다 연재되는 기사를 놓치지 않고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