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과 3의 예술'은 아름다운 음악과 뛰어난 그림을 남긴 예술가들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의미하는데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작품은 모두 이 7계음과 3원색으로부터 탄생합니다. 이를 어떻게 조합할지 고민하고, 그 결과물을 펼쳐 보이는 게 곧 예술이죠.

앞서 연재된 시즌 1이 예술가들의 삶과 철학을 소개했다면, 시즌 2에선 '영화로운 예술'이란 부제로 영화 속에 담긴 클래식, 미술, 무용 등 다양한 예술 이야기를 전합니다.
영화 '베스트 오퍼'.
영화 '베스트 오퍼'.
한 중년의 남성이 A4용지 크기 정도의 목판을 집어듭니다. 그 위에 쌓인 먼지와 곰팡이를 제거하니 멋진 그림이 형태를 드러냅니다. 네덜란드 화가 페트루스 크리스투스(1410~1473)가 그린 '어린 소녀의 초상'입니다. 강렬하고 독특한 인상을 가진 소녀의 모습이 매혹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림 구성은 단순하지만 왠지 모르게 계속 눈길이 가죠.

최고의 경매사이자 감정사로 평가받는 올드먼(제프리 러쉬)은 이 그림을 발견하고 자신이 갖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그림의 주인에겐 작품이 가짜라고 말하고, 경매 현장에서도 모조품이라 밝힌 채 경매를 시작합니다. 자신과 공모한 친구 빌리(도널드 서덜랜드)가 작품을 낙찰받도록 해, 그림을 저렴한 가격에 차지하려고 하는거죠.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 1470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 1470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베스트 오퍼'의 한 장면입니다. 베스트 오퍼(Best Offer)란 미술품 경매에서 나온 최고 제시액을 뜻합니다. 누군가에겐 인생과 맞바꿀만한 최고의 명작을 만났을 때 제시할 수 있는 최고가를 의미하기도 하죠.

올드먼은 평소 '어린 소녀의 초상'과 같은 여인의 초상화들을 빌리를 통해 낙찰받고 자신만의 비밀 방에 걸어둡니다. 살면서 한번도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한 영향이 큽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에게 감정 의뢰를 한 은둔의 여인 클레어(실비아 획스)와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올드먼에게 이 사랑은 모든 것을 다 걸만한 최고의 가치로 다가오죠. 그런데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랑이었을까요. 자신의 인생을 전부 걸어 베팅한 올드먼의 '베스트 오퍼'는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까요.
영화 '베스트 오퍼'
영화 '베스트 오퍼'
이 영화를 보면 수많은 명작들을 한번에 감상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의 ‘비너스의 탄생’, 보카치오 보카치노의 ‘집시소녀’, 알브레히트 뒤러의 ‘엘스베트 투허의 초상' 등이 올드먼의 커다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부각되는 작품은 올드먼이 놓쳐버린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입니다. 올드먼이 진품과 모조품을 얼마나 명확히 구분해 내는지, 이 점을 이용해 자신의 욕구를 어떻게 채워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주요 장치가 됩니다.

크리스투스는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입니다. 초기 교육과정에 대해서도 알려진 게 거의 없지만,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등으로 유명한 얀 반 에이크의 제자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크리스투스는 에이크 사망 이후 그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
그가 그린 '어린 소녀의 초상'은 그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몸을 약간 틀어 앉은 상반신 초상화는 에이크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초상화에선 발견하기 힘든 신비롭고 독특한 분위기로 사람들을 압도합니다. 특히 살짝 흘겨보는 듯한 소녀의 시선은 도도하면서도 도전적인 인상을 줍니다. 소녀가 입은 고급 드레스, 보석이 박힌 목걸이, 15세기 부유층 여성들이 즐겨 쓴 튜브 스타일 모자는 인물의 신분을 추측할 수 있게 합니다.

크리스투스는 초상화에 구체적인 실내 배경을 쓴 최초의 북유럽 화가입니다. 이전엔 초상화에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없는 검은색 바탕의 평면적인 배경이 사용됐을 뿐입니다. 그는 또한 '어린 소녀의 초상'에서 알 수 있든 빛에 의해 인물의 윤곽이 자연스럽게 두드러지도록 하는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영화 '베스트 오퍼'
영화 '베스트 오퍼'
그림 속에 여러 소품을 배치해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했습니다. '금 세공인 성 엘리조'는 이 점이 극대화된 작품입니다.

세 사람 중 붉은 색의 옷을 읿고 있는 남자는 저울로 금을 재고 있습니다. 그가 금 세공인 성 엘리조입니다. 그의 뒤엔 남녀가 서 있는데요. 여성의 화려한 드레스와 남성의 모피 옷은 이들이 부유한 귀족임을 드러냅니다. 성 엘리조가 오른손에 반지를 들고 있는 것은 남녀가 신혼부부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선반에 놓인 신부용 장식띠도 마찬가지죠.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금 세공인 성 엘리조', 1449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금 세공인 성 엘리조', 1449
그림 오른쪽엔 볼록 거울이 있습니다. 볼록 거울은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도 등장하는데요. 이 부분에서도 크리스투스가 에이크를 계승한 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투스는 볼록 거울을 활용해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거울 속엔 광장에 있는 두 남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두 사람 모두 잘 차려 입고 있죠. 이들 중 오른쪽에 있는 검은색 옷의 남자는 매를 들고 있는데요. 남성이 매 사냥을 하며 한가롭게 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크리스투스는 이를 통해 거울 속 귀족의 나태함과 거울 밖의 성 엘리조의 근면성실함을 대비했습니다.

영화에서 올드먼과 공모한 친구 빌리는 크리스투스의 '어린 소녀의 초상'을 낙찰받지 못합니다. 올드먼은 자신이 탐내던 이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되자 빌리에게 크게 화를 냅니다. 크리스투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나니 그 심정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죠.

여러분은 '베스트 오퍼'를 할 만큼의 감동적인 명작을 만나신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은 미술관으로 가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언젠가 마주하게 될 인생의 명작을 기다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