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편의·효율성과 상충 '딜레마'…검색 장비 진화
"보안검색은 항공기 안전ㆍ탑승객 생명 위한 기본 조치"

[※ 편집자 주 = '공항'은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충만한 공간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주공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지나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이어지는 이 시대에도 '쉼'과 '재충전'을 위해 누구나 찾고 싶어하는 제주의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연간 약 3천만 명이 이용하는 제주공항. 그곳에는 공항 이용객들의 안전과 만족, 행복을 위해 제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비록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며 제주공항을 움직이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이야기와 공항 이야기를 2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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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 사람들] ②공항 보안검색의 발단은 '항공기 납치'
항공 보안법은 모든 항공기 탑승 승객의 신체, 휴대물품, 위탁수하물에 대한 보안검색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제협약에 따라 공항시설과 항공기 내에서의 안전을 위한 조치다.

과거 국내외 공항에는 이와 같은 보안검색 절차가 없었다고 한다.

비행기를 탈 때도 마치 지금의 버스, 지하철을 타듯 사람들은 항공권을 사자마자 아무런 제재 없이 주기장으로 걸어가 탑승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까다로운 보안검색 과정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항공기 공중납치를 뜻하는 '하이재킹'(hijacking)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항공산업이 발달하자 동시에 테러범에 의한 항공기 납치 역시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러다 우리나라에서도 항공기 납치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1969년 12월 11일 강릉에서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 등 51명을 태우고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YS-11여객기(KE 826편)가 대관령 상공에서 고정간첩 조창희(당시 42세)에 의해 북으로 납치된 것이다.

당시 승객으로 위장한 조창희는 항공기 이륙 후 조종실로 침입해 권총으로 기장을 위협, 북한 원산 선덕비행장에 비행기를 강제로 착륙시켰다.

북한은 사건 직후 항공기 납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이듬해 2월 탑승자 51명 중 39명을 판문점을 통해 귀환시켰다.

하지만 나머지 승객 8명과 승무원 4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제주공항 사람들] ②공항 보안검색의 발단은 '항공기 납치'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1970년 1월 7일 공항에서 경찰이 보안검색을 실시하도록 했다.

일일이 경찰이 짐을 열어 흉기 또는 총기류 등 무기가 있는지를 맨눈으로 확인하고, 승객의 몸수색을 하는 방식이었다.

또 같은 해 2월 26일부터 무장 경찰이 기내보안요원(보안승무원)으로 항공기에 탑승해 더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이 같은 조치에도 이듬해 항공기 납치는 또다시 발생했다.

1971년 1월 23일 속초에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HL5012 여객기가 23살 청년 김상태에 의해 공중납치된 것이다.

김씨는 직접 만든 폭탄을 가지고 승객 55명과 승무원 5명의 목숨을 위협하며 북한으로 갈 것을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수로 그쳤지만, 큰 희생이 뒤따랐다.

납치범은 보안승무원의 총에 맞아 즉사했고, 쓰러진 김상태가 폭탄을 조종실 바닥에 떨어뜨리자 부기장 전명세씨가 몸을 날려 폭발물을 끌어안았다.

전씨의 희생으로 비행기는 무사히 강원도 고성군 휴전선 인근 해변에 불시착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범인의 휴대물품을 제대로 검사하지 않은 검문 경찰관과 낡은 금속탐지기 등 허술한 보안 검색 탓으로 귀결됐다.

당시 속초공항에 비치된 금속탐지기는 몇 겹의 기름종이와 비닐 등으로 싼 금속조차 탐지하지 못할 정도로 낡고 기능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부는 안전 운항을 위해 주민등록증 제시, 금속탐지기 검사를 더욱 강화했다.

[제주공항 사람들] ②공항 보안검색의 발단은 '항공기 납치'
그러나 보안검색은 승객 편의, 효율성과 상충하는 '딜레마'에 놓였다.

보안검색 시간을 줄이기 위해 1980년 엑스레이(X-RAY) 검색기가 도입됐고, 1984년 엑스레이 판독 요원으로 전경이 배치되는 등 계속해서 빠르고 효과적인 최신 장비도입 압박을 받았다.

국내선 상황이 신혼여행 때나 한 번 타는 비행기가 아닌 점차 비행기 대중여행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제주, 서울-부산 등 주요 노선에는 400석이 넘는 보잉747 등 대형 여객기가 투입되면서 편당 승객 처리능력이 크게 향상됐지만 보안검색을 비롯한 탑승수속 절차 개선은 더뎠다.

한편으론 1987년 11월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에 이어 1988년 88서울올림픽이라는 국제 행사가 치러지면서 공항 보안검색은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가장 큰 사건은 2001년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은 9·11사태였다.

테러범에 의해 공중납치된 두 대의 민간 여객기가 시속 950㎞의 속도로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WTC) 건물과 부딪친 것이다.

110층 높이의 쌍둥이 빌딩 모두가 무너져내렸고, 구조에 투입된 소방관과 경찰관까지 합해 모두 2천753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됐다.

이 사건으로 전 세계 각국이 항공 보안체계를 재정비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2002년 항공보안법의 전신인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제주공항 사람들] ②공항 보안검색의 발단은 '항공기 납치'
항공기 내 소란행위, 승무원·기장 등에 대한 업무방해 행위 등에 대해 엄격히 규제하는 내용이었다.

이어 보안검색 주체를 명확히 하기 위해 그 주체를 경찰에서 한국공항공사와 같은 공항운영자로 일원화했다.

한국공항공사는 특수경비업체에 보안검색업무를 위탁해오다 2020년부터 항공보안파트너스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검색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보안검색 장비도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하고 있다.

과거 총기류와 폭발물은 대부분 금속이었지만, 현재는 기술의 발달로 3D 프린터로 총기를 만들 수 있고 액체와 같은 비금속물질로도 충분히 가공할 살상력을 가진 폭발물 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주국제공항에는 지난 2019년부터 국내 최초로 금속·비금속 물질로 만들어진 무기류 적발이 가능한 스마트 시큐리티 장비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또 손바닥 정맥 또는 지문 등을 활용해 탑승 수속을 할 수 있는 '바이오인증 One ID' 신분확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김홍일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보안관리부 부장은 "제주공항은 스마트 시큐리티 장비 등이 풀세트로 들어온 국내 유일한 공항"이라며 "보안 수준을 높이고, 인적 에러를 낮추는 방향으로 보안검색이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와 같은) 보안검색 절차는 한꺼번에 생겨난 게 아니었다.

초반 간단한 보안검색 수준에서 시작하다 상식을 넘어서는 범죄행위가 다양하게 발생하면서 지금의 수준까지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보안검색은 항공기 안전, 궁극적으로 탑승객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 조치"라며 이용객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제주공항 사람들] ②공항 보안검색의 발단은 '항공기 납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