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시내의 한 매장 앞. /연합뉴스
서울 명동 시내의 한 매장 앞. /연합뉴스
"살아남은 가게만 득을 보는 셈이죠." (서울 명동 한 분식집 사장 K씨)

지난주 서울 중구 명동 거리. 방역 대응 위드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 발길이 늘었다. 문을 연 가게가 많진 않지만 개점을 한 몇몇 곳은 자리를 차지한 손님들이 70~80%가량 보였다.

유동인구가 가장 적은 오전 시간대였지만 영어·일어·중국어 등 외국어가 간간이 들려왔다. 거리엔 디저트를 파는 푸드트럭과 양말부터 K팝스타들의 얼굴이 새겨진 다양한 기념품을 판매하는 노점상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냈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지나고 일상 회복 국면을 맞으면서 명동 상권이 기대감에 차 있었다. 다만 현장에선 명암이 엇갈렸다. 여전히 조금만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는 상가가 늘어서 공실이 즐비했다. 기존에 식당이나 카페·옷가게·액세서리점 등을 운영하던 곳으로 업종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영세업장들이 많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주로 운영하는 소규모 업장은 여전히 불황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일부 대형 맛집들은 활기가 흘러넘쳤다. 코로나19 유행에도 부침이 적었던 유명 가게들은 기대 이상 특수를 누리게 됐다.

맛집 찾는 줄 다시 길어져

점심시간이 되자 유명 칼국수 맛집에선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 식당에서 파는 칼국수 가격은 1인분 1만원대로 저렴하지 않지만 인증샷을 찍어가며 입장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직장이 인근에 있는 회사원 감모 씨(30)는 "웨이팅이 많을 것 같아 통상 점심시간보다 조금 빨리 나왔는데도 사람이 많다. 코로나19 시기에도 종종 왔는데 손님이 적었던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인근 딤섬 레스토랑에도 사람들이 몰려 30~40분 이상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애플은 올 상반기 명동에 한국 세 번째 애플스토어인 '애플 명동'을 열었다. 국내 애플스토어 중 최대 규모다. 롯데백화점은 내년 영플라자에 대한 대대적 재단장에 나서 명동 상권을 대표하는 명품 식음료(F&B) 타운으로 변신시킨다는 계획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명동 복귀를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친구들과 여행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했다는 벤 씨(22·캐나다)는 "한국에 가면 명동을 가보라고 해서 이곳을 찾았다"며 "K팝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 주변에서 한국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생각보다 문을 닫은 가게가 많지만 SNS에서 유명한 가게는 대부분 들를 수 있었다"면서 기념품과 디저트 등이 잔뜩 담긴 쇼핑백을 흔들어 보였다.
서울 중구 명동 상점들이 비어있다. /뉴스1
서울 중구 명동 상점들이 비어있다. /뉴스1
하지만 같은 날 메인거리 뒷골목에서 만난 한 화장품 가게 직원 윤모 씨(26)는 경기가 좀 풀린 것 같냐는 질문에 고개를 내저었다. 윤 씨는 "TV와 신문에서는 명동 경기가 나아졌다고 나오는데 뭘 보고 그렇게 얘기하는지 모르겠다"며 "여기선 전혀 못 느끼겠다. 거리를 지나는 이들은 늘어도 매장을 찾는 고객은 적고 그나마도 조금 둘러보다가 물건을 안 사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푸념했다.

위드코로나로 손님이 북적일 것으로 예상했던 기념품 가게도 형편이 썩 나아 보이진 않았다. 이곳에서 20년 이상 옷·액세서리 등 다양한 기념품을 팔아 왔다는 박모씨(61)는 "함께 장사를 하던 이들은 대부분 망해 명동에서 빠져나갔다. 늘어나는 관광객들에 비해 남은 가게가 많지 않아 아직 운영하는 사람들은 약간의 특수를 누리게 됐지만 그것도 유명 가게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명동 상권 주요 타깃인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이 여전히 들어오지 않으니 매출이 크게 늘지 않는다"며 "구매력이 큰 중국인들이 빠져 나간 것이 가장 큰 타격"이라고 덧붙였다.

위드코로나 이전 영세업자 대부분 폐업

메인 거리가 아닌 명동은 여전히 썰렁한 분위기다. 외국인 관광객들로 활기찬 분위기와 달리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서면 한 골목 전체 가게가 줄줄이 폐점한 곳도 있었다. 지표상 나타나는 공실률은 가게 두 곳 중 한 곳 꼴로 문 닫는 수준이었지만 현장의 체감률은 더욱 심각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상가 임대 문의가 조금 늘긴 했지만 대부분 메인 거리를 찾는다"며 "아무리 거리두기 조치가 완화됐다고 해도 이미 문을 많이 닫아 분위기가 안 좋은 안쪽 골목에 선뜻 들어와 장사를 하긴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서울 명동 상가 공실에 임대안내 현수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명동 상가 공실에 임대안내 현수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4분기 기준 서울 명동 상가의 공실률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명동은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50.1%에 달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4분기(4.3%)와 비교하면 무려 12배가 넘는다.

상권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아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는 게 대부분 상가 임차인들의 판단이었다. 10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 씨(54)는 "코로나19 시기에 매출은 없고 월세는 계속 나가니 빚만 늘어나다가 위드코로나 직전에 손해를 많이 보고 폐업한 가게들이 한둘이 아니다. 남아있는 사람들 역시 권리금이라도 건져 보려고 꾸역꾸역 매장을 열어 오던 상황이라 관광객이 약간 늘었다고 해서 형편이 나아지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있는 한 상가가 일상 회복기를 맞아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안혜원 기자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 있는 한 상가가 일상 회복기를 맞아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안혜원 기자
상가 건물주들은 도리어 일상 회복기를 기회로 삼는 분위기다. 물론 코로나19 시기 토지 재산세를 납부하는 명동 상가 건물주들의 소득도 크게 줄었다. 한국부동산원이 파악한 명동 상가 순영업소득(중대형 점포 기준)은 지난해 3분기 ㎡당 15만4900원에서 올해 3분기 1만1500원으로 10분의 1 토막이 났다. 하지만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아 임대료를 높게 책정한 뒤 공실로 두더라도 세입자를 받지 않은 경우도 많다. 건물을 판다 해도 임대료가 건물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건물 리모델링을 해 상가 가치를 키워 새로 임차인을 받으려는 건물주가 많다. 실제 한 거리에선 건물 10개 중 2~3개가량꼴로 리모델링 진행 중이었다. 명동의 L중개업소 대표는 "명동이 오래된 상권이다 보니 노후된 건축물이 많아 리모델링 할 연혁이 된 상가가 많다"며 "통상 리모델링을 하고 싶어도 세입자를 내보내려면 그 과정이 까다로워 포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자연스레 공실이 됐으니 상가 가치를 높일 시기라고 여기는 건물주들도 있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