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과수원의 세레나데' 중 한 장면.
연극 '과수원의 세레나데' 중 한 장면.
'사랑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사랑은 언어로 담지 못할 신비다. 나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고, 때로는 죽음까지 무릅쓰게 만든다. 사랑이 모든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소재인 이유다. 산 꼭대기로 거대한 바위를 끊임 없이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불가능한 목표인 걸 알면서 예술가들은 노래와 춤, 시와 그림으로 사랑을 담아낸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말을 하지만, 정말 중요한 말은 말 너머에 있는 것 아닐까요?"

지난 2~3일 서울 예술공간 혜화에서 상연된 연극 '과수원의 세레나데'는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연극은 시인 신동엽이 번역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과수원의 세레나데>를 원작으로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예술가 생애 첫 지원’을 받아 이대성 문학연구자가 공연 기획을 맡았다.
연극 '과수원의 세레나데' 중 한 장면.
연극 '과수원의 세레나데' 중 한 장면.
'과수원의 세레나데'는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에 의문을 던진다. 언어로 말하는 남자 주인공 '강산'과 실어증에 걸린 여자 주인공 '박은하'는 우연히 과수원에서 만나 서로를 알게 된 뒤 음악과 시, 몸짓, 필담으로 교감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한 마디 말하지 않은 채 사랑에 빠져드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이렇게 묻는 듯하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사랑할 수 있을까?'
연극 '과수원의 세레나데' 중 한 장면.
연극 '과수원의 세레나데' 중 한 장면.
기획자 이대성 문학연구자는 "경쟁과 대립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언어와 준언어, 비언어 요소를 모두 동원해서 사랑의 언어를 선물하고 싶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이런 의도를 담아 여러 실험도 벌였다. 무대 한 켠에 가야금을 올려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정민아 연주자가 노래와 가야금 연주를 선사했다. 노래는 은하의 사랑 고백을 대신하고, 때로는 좌절과 외로움을 담아냈다. 여자 주인공 '박은하'를 연기한 이정은 배우는 은하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바이올린과 오카리나를 연주하기도 했다.

주최 측은 연극이 끝난 이후에도 누구나 무대를 즐길 수 있도록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자막을 입혀 공연 동영상(실황 녹화)을 제작해 제공할 예정이다.

이 연극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고 신동엽기념사업회, 신동엽학회, 필로버스가 협찬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