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하이저의 ‘도시’ 속 조형 작품 ‘45도, 90도, 180도’. 삼각형 모양의 반듯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땅에 뾰족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트리플 오트 파운데이션 제공
마이클 하이저의 ‘도시’ 속 조형 작품 ‘45도, 90도, 180도’. 삼각형 모양의 반듯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땅에 뾰족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트리플 오트 파운데이션 제공
미국 네바다주 모하비 사막 한복판에는 불가사의한 ‘돌의 도시’가 있다. 여의도면적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길이 2.4㎞, 폭 800m 크기의 움푹 팬 땅에 흙·돌·콘크리트로 된 인공 구조물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ㄱ’자 모양 기둥부터 기념비 모양의 삼각형 돌까지 용도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조형물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사람의 흔적은 없다.

수만 년 전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이 남긴 흔적을 연상케 하는 이곳은 실제론 현대미술 작품이다. ‘대지(大地)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미국 설치미술가 마이클 하이저(78)의 ‘도시(City)’란 이름의 작품이다. 그가 1972년부터 무려 50년 동안 매만진 작품이 마침내 완성돼 다음달 2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하이저는 휴대폰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오지에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든 걸까.

50년간 537억원 쏟아부어

대지미술은 미국에서 탄생한 설치미술의 한 조류다. 미술관 대신 자연을 배경으로 삼는 게 특징이다. 대지미술 작품 중에는 평야나 사막 등 대자연의 광대함을 강조하는 작품이 많다. 거의 모든 대지미술 작가가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 출신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에선 이승택(90) 등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대지미술 작품을 실험적으로 내놓은 적이 있다.

하이저는 네바다주에서 자랐다. 그는 “항상 마음 한편에 모하비 사막에 대한 동경과 경외심이 있었다”고 했다. 뉴욕의 무명 화가였던 하이저가 1960년대 후반께 주목받기 시작한 대지미술에 홀딱 반한 이유다. 그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나 금문교와 경쟁하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1969년 네바다 사막에 설치한 작품 ‘이중 부정’은 그를 순식간에 세계 미술계의 스타로 올려세웠다. 그는 사막에 깊이 12.2m, 길이 30.5m에 달하는 구덩이 두 개를 파더니 이를 작품이라고 불렀다. 관람객들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구덩이 안과 사막 풍경 등을 보게 된다. 미술계는 “장엄한 자연 풍경과 작품, 관람객이 하나가 되는 작품”이라며 환호했다.

대지미술가로 자리 잡기 시작한 1970년부터 그는 틈만 나면 라스베이거스의 관광용 헬기를 타고 사막을 보러 다녔다. ‘도시’를 설치할 땅을 찾기 위해서였다. 본격적인 설계도를 그리고 작업을 시작한 건 1972년. 그는 “중남미 유적지와 미국 원주민들의 전통 건축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우리 시대의 새로운 유적지를 만들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작업 계획을 발표하자 전 세계 미술계의 이목은 네바다 사막으로 쏠렸다. 후원금도 쏟아졌다. 지난 50년간 ‘도시’를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은 4000만달러(약 537억원)로 추산된다. 절반은 모금을 통해 조달했고, 나머지는 하이저가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의 대부분은 수많은 중장비를 사막으로 ‘출퇴근’시키는 데 들어갔다. 재료는 현지에서 조달했다.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그곳의 흙과 돌, 모래로 만든 콘크리트만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도시’ 속 바닥에 설치된 조형물.
‘도시’ 속 바닥에 설치된 조형물.

“환상적인 경험”…하루 6명만 관람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조형 작품이다. 관람객은 이곳에서 두어 시간 동안 경사진 자갈길과 여러 구조물 사이를 마음대로 거닐 수 있다. 하이저는 이곳을 대표하는 구조물로 삼각형 모양의 돌을 모아 놓은 ‘45도, 90도, 180도’와 누워 있는 사다리꼴 기둥 모양의 ‘콤플렉스 원(Complex One)’을 꼽았다. 뉴욕타임스는 “주변의 황폐한 사막과 어우러져 마치 환상 속 세계에 온 느낌을 준다”고 평가했다.

‘도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작품을 관리하는 재단인 트리플 오트 파운데이션 웹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관람을 신청할 수 있다. 그렇지만 관람은 ‘하늘의 별 따기’다. 하루 6명만 관람객으로 받기 때문이다. 예약에 성공하면 ‘도시’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에 모여 재단이 제공하는 차를 타고 작품을 보러 가게 된다.

마이클 고반 LA카운티미술관(LACMA) 관장은 “고대 유적이나 도시 못지않은 장엄한 작품”이라며 “공간을 만들고 조직하려는 우리의 원초적 충동을 인식하게 한다”고 말했다.

성수영/로스앤젤레스=이선아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