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를린 미술계의 최대 화제는 두 명의 여성 거장이다. ‘거미 여인’으로 불리며 현대미술계의 아이콘으로 남은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와 독일이 낳은 세계적 사진가 칸디다 회퍼(78)다. 부르주아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역사적 미술관 그로피우스바우에서, 회퍼는 독일 사진박물관에서 각각 대규모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동시대를 산 노년의 여성과 현대미술을 사랑하는 애호가들로 연일 붐비고 있다.
칸디다 회퍼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의 반아베 미술관 V’(2003) /VG Bild-Kunst, Bonn
칸디다 회퍼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의 반아베 미술관 V’(2003) /VG Bild-Kunst, Bonn
칸디다 회퍼는 공간을 찍는 사진가다. 누구나 한 번쯤 가봤을 공공의 장소가 그 대상이다. 도서관과 교회, 콘서트홀과 미술관 등을 담는다. 건물의 계단과 난간을 찍기도 하고, 건물로 둘러싸인 안마당 중정(中庭)과 때때로 동물원을 포착하기도 한다. 흔한 장소를 주제로 한 사진들 앞에서 사람들은 오래 머문다. 모든 선과 점과 빛이 명료해진 사진 안으로 빨려 들어가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이 흐르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50년 '텅빈 공간' 포착…사진의 혁신가
베를린 사진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칸디다 회퍼의 전시회 제목은 ‘이미지와 공간, 부제: 미술도서관 사진 컬렉션과의 대화’다. 전시장에는 198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회퍼의 작품 90여 점이 걸렸다.

전시회는 독특한 큐레이션으로 지난 3월 개막 당시부터 호평이 이어졌다. 베를린미술도서관이 150년간 수집, 소장하고 있는 건축 관련 사진과 회퍼의 작품들을 함께 걸었기 때문이다. 공동 큐레이터를 맡은 루드거 데렌탈과 랄프 괴르츠는 “회퍼와 과거 건축 사진들을 비교해보면 그의 시선이 얼마나 특별한 접근인지 알 수 있다”며 “예술 사진의 본질에 대해 더 깊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50년간 포착한 ‘부재의 건축’
그의 작업엔 사람이 없다. 원근법도 사라진다. 작품마다 특유의 담담함과 웅장함, 객관성이 묻어나오는 이유다. 1970년대 쾰른으로 이주한 튀르키예인의 공간을 6년간 촬영한 뒤 그는 “그들의 삶에 침범하거나 개입하는 걸 원치 않았다. (나에게 낯선) 동양의 공간에 섣불리 카메라 렌즈를 갖다 대는 것 역시 이국성을 착취한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고 했다.

회퍼의 프레임 안에선 일상의 공간 속 모든 것이 공평한 가치를 지닌다. 바닥의 균열, 계단의 끝점, 벽지의 작은 무늬, 샹들리에의 작은 부속품까지 또렷하고 분명하다. 이번 전시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1960년대 리버풀 시리즈의 컬러 사진, 1980년대 이후 카페와 호텔, 스파 사진까지 다양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연출하지 않되, 우연에 기대지 않는다
회퍼는 공간이 과대 평가되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인공조명을 쓰지 않는다. 공간을 완벽하게 담아내기 위해 자연의 빛과 원래의 조명 그대로를 두고 한참 기다리는 느림의 미학을 담는다. 어두운 실내 공간을 촬영할 땐 삼각대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노출을 길게 준 뒤 점심을 먹고 오기도 한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콘서트홀이나 대형 경기장을 찍을 때 그는 모형 사진을 작업실에 걸어두고 한참 연구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회퍼가 포착한 사진에는 공간의 목적과 역사, 사회적 존재감이 흘러넘친다. 누가 다녀갔을지, 그들의 삶은 어땠을지 생각하게 한다. 작자 미상의 과거 흑백사진들이 100점 이상 함께 배치돼 건축 사진의 일대기를 볼 수 있는 회고전이다. 전시는 8월 28일까지 이어진다.

베를린=김보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