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3개년 프로젝트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3개년 프로젝트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0과 1의 세계.’

디지털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팬데믹 3년의 시간은 우리를 타인과 멀어지게 했고, 디지털 공간과는 더욱 밀접해졌다. 관객의 발길이 끊기자 미술관들은 생각했다. ‘관객을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관객을 직접 찾아가자’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국립현대미술관 ‘워치 앤 칠’은 각국의 미술관과 협업해 선보인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현대미술계의 넷플릭스와 같다. 지난해 처음 연 전시는 아시아 미술관 네 곳과 협업해 서로의 작품을 디지털로 공유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세계 70개국의 아트 마니아들이 찾아 60만 뷰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디지털 공간에서 ‘미술 한류’가 통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이 전시가 올해 시즌2를 맞이했다. 작년보다 더 진보한 ‘감각과 공간’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미생물과 인공지능도 감각을 느낄까
국립현대미술관이 3개년 프로젝트로 기획한 워치 앤 칠의 두 번째 전시 이름은 ‘감각의 공간’이다. 이번 전시는 스웨덴 아크데스(ArkDes) 국립건축디자인센터와 아랍에미리트 샤르자미술재단(SAF)과 함께 기획했다. 김실비, 유리 패티슨, 제나 수텔라 등 국내외 작가들의 미디어 작품 22점을 전시한다.
'0 과 1의 세계'…미생물과 인공지능도 감각을 느낄까
첫 번째 챕터는 ‘보는 촉각’이다. 디지털의 주된 감각인 시각과 청각을 결합해 그 이상의 감각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담았다. 가장 처음 보이는 것은 안드레아스 바너슈테트의 ‘레이어-흐름’(2021)이다. 스스로를 ‘NFT(대체불가능토큰) 조각가’라고 칭하는 그는 가상의 공간 안에 끊임없이 질척한 반죽 기둥들이 흘러내리는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ASMR 소리와 함께 파스텔 색깔 덩어리들의 영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묘한 만족감이 든다.

후각에 주목한 염지혜의 ‘사이보그핸드스탠더러스의 코’(2021)는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인 숨쉬기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먼 미래에 기술 진보를 통해 사이보그가 된 인류는 과연 숨을 쉬고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생명체의 기본적인 숨쉬기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제나 수텔라는 ‘니미아세티’(2018)를 통해 미생물인 낫토균 박테리아의 움직임을 인공지능(AI)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알고리즘을 이용해 그들만의 언어를 창조했다. 박테리아의 움직임으로 만든 ‘언어의 소리’는 다른 종 간에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테러 복장을 한 자는 테러리스트인가?
두 번째 챕터 ‘조정된 투영’은 주관적인 시간과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조정은 상황에 따라 맞춘다는 뜻이고, 투영은 비유적으로 어떤 일을 다른 일에 반영해 나타냄을 말한다. 작가들은 우리가 과연 자신의 감각을 통해 세계를 어떠한 오류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묻는다.
유리 패티슨 ‘선셋 프로비전’(2020~2022). /ArkDes 제공
유리 패티슨 ‘선셋 프로비전’(2020~2022). /ArkDes 제공
유리 패티슨의 ‘선셋 프로비전’(2020~2022)은 언뜻 아름다운 바다 풍경처럼 보인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하늘은 사실 공기 오염도를 측정하는 실시간 데이터를 영상화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산화탄소, 미세먼지, 오존 등 대기 오염 물질 수치를 3차원(3D) 작업을 거쳐 생동감 있는 영상으로 제작했다. 인간이 발생시킨 오염물질이 만든 일몰의 풍경은 아름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공포스럽다.
아마드 고세인 ‘제 4단계’(2015). /SAF 제공
아마드 고세인 ‘제 4단계’(2015). /SAF 제공
샤리프 와키드의 ‘다음 편에 계속…’(2009) 영상에는 테러리스트처럼 보이는 남자가 등장한다. 지하드를 연상케 하는 그는 소총을 앞에 둔 채 아랍어로 무언가 진지하게 글을 읽는다. 마치 테러협상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천일야화’를 읽고 있다. 테러와는 전혀 무관한 이 장면을 시각 장치에만 의존한 채 아무런 조정 없이 받아들였다면 관객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디지털 세상에도 국경이 있을까요
김아영 ‘페트라 제네트릭스를 찾아서’(2020). /작가 소장
김아영 ‘페트라 제네트릭스를 찾아서’(2020). /작가 소장
세 번째 챕터는 ‘트랜스 X 움직임’이다. 디지털 공간은 과연 아무런 제약 없는 자유의 공간일까. 김아영의 ‘다공성 계곡, 이동식 구멍’(2017)에는 가상의 공간에 사는 데이터 덩어리 ‘페트라’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살던 계곡이 폭파되자 디지털 피난민 신세가 된다. 다른 데이터센터로 이주하기 위해 심사를 받지만 그를 받아줄 곳을 찾지 못한 채 영상이 끝난다. 디지털은 경계 없이 다 뚫려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구상의 국경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또한 경제·정치 이슈 등 현실 문제가 직접적으로 디지털 공간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마지막 챕터는 ‘내 영혼의 비트’다. 인간이 개발한 기술에 사람들의 믿음이 더해 만들어진 ‘비트코인 신드’. 이는 인간의 환상과 염원이라는 오래된 근원적인 원시적 습성이 빚어낸 현상이다. 첫 번째 챕터에 이어 다시 등장한 NFT 조각가 바너슈테트는 ‘비율-미끄러지는 제우스 XL’(2021)을 통해 디지털 예술에서 비례를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대해 실험한다. 영상에는 커다란 돌 위에 제우스 신상의 머리가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 기이한 장면이 펼쳐진다. 이것은 과연 신성 모독일까. 아니면 아무런 의미 없는 동작이었을까. 관객은 마치 최면에 빠지듯 작품을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디지털 세상에서 과연 우리의 영혼은 0과 1 사이 어디쯤에 있을까. 전시는 오는 9월 12일까지 열린다.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