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이 입점한 서울의 한 백화점. /연합뉴스
샤넬이 입점한 서울의 한 백화점. /연합뉴스
지난 11~12일 서울 내 백화점의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 매장은 한산했습니다. 앞서 가격 인상을 한 탓입니다. 매번 늘어서 있던 샤넬 매장 대기 줄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언제든 기다리지 않고 즉시 입장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매장 직원들은 “매장 앞 대기 줄이 사라져 입장 예약 명단에 ‘0’명이 뜬 것은 2년 만에 처음 본다. 이틀 내내 대기가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11~12일 이틀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본점과 신세계백화점 본점,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 롯데 잠실 에비뉴엘 등 주요 백화점의 샤넬 매장에선 오전, 오후 가릴 것 없이 대기 인원이 0명으로 전혀 없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올해 상반기까지 ‘오픈런’(매장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행위) 대란으로 몇 시간씩 줄을 서도 당일 매장 입장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간간이 매장을 방문한 소비자들도 “올려도 너무 많이 올렸다”는 말부터 나왔습니다. 인상된 가격표를 확인한 후 제품을 사지 않고 곧바로 매장을 나가는 이들도 많았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서울의 한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된 샤넬 제품. /연합뉴스
서울의 한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된 샤넬 제품. /연합뉴스
명품업계에 따르면 샤넬은 지난 10일 올해 들어 세 번째 가격인상을 단행했습니다. ‘예물 백’으로 불리는 인기 제품군 ‘클래식 라인’ 가격은 약 5% 올랐습니다. ‘클래식 플랩백’의 스몰(1160만원), 미디움(1239만원), 뉴미니(594만원)는 각각 55만원, 59만원, 28만원 올랐습니다. 이 중 가장 선호도가 높은 미디움 사이즈의 가격을 따져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2019년 11월)보다 약 73%(524만원) 인상돼 1200만원선을 넘겼습니다.

이 밖에도 ‘샤넬 입문 백’으로 불리는 클래식 체인 지갑은 380만원에서 399만원으로, 가브리엘 호보백 스몰은 655만원에서 688만원으로 각각 올랐습니다.

샤넬 제품의 가격 인상은 올해에만 1월, 3월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지난해에도 네 차례(2월, 7월, 9월, 11월) 가격이 인상된 바 있습니다. 잦은 가격 인상으로 인해 일각에선 국내 소비자를 배려하지 않는 ‘배짱 영업’이란 비판도 나옵니다.
서울의 한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된 샤넬 제품. /연합뉴스
서울의 한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된 샤넬 제품. /연합뉴스
그러자 샤넬 대다수 매장에선 거짓말처럼 손님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오픈런 인파로 몸살을 앓던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매장 측에선 “오전에 매장 문을 열기 전까지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 이상 줄을 서 항상 정신 없는 분위기 였는데 이렇게 매장 내부가 한산한 건 오랜만에 본다”며 “지난주 가격을 확인하고 놀라는 분들이 많다. 예전엔 매장에 입고되기 무섭게 몇 분 이내 팔려 나가던 클래식 백이나 코코핸들 백 등이 팔리지 않고 한 나절 이상 남아 있는 것도 종종 보았다”고 귀띔했습니다.

소비자들은 명품 브랜드들의 잦은 인상과 부족한 공급에 대한 불만과 피로감을 호소했습니다. 인상 소식을 접한 주요 명품 관련 커뮤니티에는 “해도 너무하다”라는 게시글이 여럿 올라왔습니다. 소비자 강모 씨(35)는 “지난주 평일 매장을 방문하니 구경하기도 힘들다는 클래식 라인 백들이 사이즈 별로 대부분 남아 있었는데 1200만원 넘는 가격표를 보고 그대로 내려놓았다”며 “이 돈을 주고 작은 가방 하나를 살 가치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현타’가 왔다. 이 가격이라면 선택지가 많아 굳이 샤넬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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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명품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이 가격엔 도저히 못 산다’는 심리적 저항선이 생긴 것으로 풀이됩니다. 횟수로 따져도 지난해 네 번, 올해도 세 번이나 가격을 올린 샤넬의 경우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줄어 리셀가가 백화점 정가보다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리셀 플랫폼 ‘크림’에 올라온 샤넬 클래식 미디움 플랩백 리세일 가격은 올해 1월 1400만원에서 지난달 말 1110만원까지 떨어졌습니다. 백화점 정가보다 140만원가량 저렴한 셈입니다.

명품업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원자재 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며 물류 비용도 늘었다는 점을 가격 인상 배경으로 들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유로화 약세도 주요 원인으로 꼽습니다. 샤넬코리아는 “지역 간 존재할 수 있는 가격 차를 줄이기 위해 유로화 기준 가격 대비 10% 내외로 모든 시장에서 비슷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의 한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된 샤넬 제품. /연합뉴스
서울의 한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된 샤넬 제품. /연합뉴스
그러나 소비자들은 납득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환율과 원자잿값, 인건비 상승분이 있다고 해도 1년에 몇 번씩 제품 가격을 조정할 만큼 변동폭이 크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큰 돈을 쓰면서 오픈런에 불친절한 서비스까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명품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다만 명품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의 부정적 피드백을 크게 신경쓰진 않는 모양새입니다.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인상에 나선 명품 브랜드들이 많습니다. 루이비통은 이달 초부터 순차적으로 제품 가격을 올리고 있습니다. 앞서 크리스찬 디올과 프라다 등도 제품 가격을 10%씩 인상했습니다. 이밖에 에르메스·구찌 등 대다수 유럽 기반 명품 브랜드들은 유로화 가치가 하락하며 악화된 수익성을 가격 인상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을 검토 중입니다.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폭발로 촉발된 명품 가격 인플레이션이 하반기에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