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아시아문학페스티벌 조직위원회는 제4회 아시아문학상 수상자로 ‘경계인’의 삶을 살아온 일본 문단의 거장 김시종 시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김 시인은 1929년 부산에서 태어나 어머니 고향인 제주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던 중 관립광주사범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제주 4·3항쟁에 참여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재일(在日)의 삶을 살고 있다.
지난해 부커 국제상(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받은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가 출간됐다. 이 책은 200여 쪽, 프랑스어 원작도 150여 쪽에 불과한 중편소설이다. 그런데도 2018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각종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20년 영어로 번역돼 지난해 세계 3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는 등 세계 문학계를 들썩이게 했다. 짧은 분량을 무색하게 하는 강렬한 내용 덕분이다.프랑스인 어머니와 세네갈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 다비드 디옵(56·사진)은 이 책에서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프랑스 군대에 입대한 세네갈 청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초콜릿 군인’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이들이다. 독일과 전쟁 중이던 프랑스군은 세네갈 등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시민권과 연금 등을 미끼로 청년들을 모집했다. 적을 겁주기 위해 야만적으로 싸우기를 주문했고, 총알받이 정도로 생각해 위험한 임무에 먼저 투입했다. 그렇게 아프리카 청년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작가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갓 스물이 된 세네갈 청년 알파의 눈으로 풀어낸다. 늙은 부모님을 편히 모실 수 있는 연금을 받을 꿈에 부풀어 입대했지만, 동반 입대한 소꿉친구 마뎀바가 전장에서 중상을 입으면서 잔인한 현실에 눈을 뜬다. 마뎀바는 고통을 덜기 위해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지만 알파는 거절한다. 친구는 고통 속에 죽고 알파 역시 자신의 비겁함을 자책하며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그는 매일 밤 적진에 잠입해 독일군을 살해하고 손을 잘라 돌아온다. 동료 병사들은 처음엔 환호했지만 그런 일이 되풀이되자 무서워한다. 알파가 악마에 씌었다고 수군대고, 그를 전장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전쟁이 한 영혼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는 여러 소설과 영화에서 다뤄졌다. 주로 영국과 프랑스, 미국과 독일인의 시선이었다. 이 식민지 청년의 이야기는 새로운 아픔과 비극을 일깨워준다. 기승전결을 갖춘 서사 대신 의식의 흐름을 시적인 문장으로 풀어낸 것도 특징이다. 독자는 알파의 머리에 들어간 듯 그가 생각하고 느낀 바를 그대로 체감할 수 있다.디옵은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은 세네갈에서 보냈다.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는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1차대전에 참전했던 증조부의 편지에서 소재를 얻었다고 한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코로나19 팬데믹, 전 세계가 전염병 확산을 근심하느라 몸을 낮췄다. 축제는 멈추고 거리는 텅 비었다. 그 와중에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투자 열기만은 꺼질 줄을 몰랐다. 소설가는 사북지역을 떠올렸다. 그가 태어나 어린 시절 잠시 머문 그 곳. 탄광촌이었다가 폐광촌이었다가 카지노가 들어선 곳. "침체됐지만 도박에 대한 활기만은 억지스럽게 활활 타오르는" 그 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소설가의 고민과 의문은 한 권의 소설이 됐다.14일 소설가 강성봉은 장편소설 <카지노 베이비>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소설 속 카지노에 버려진 아이처럼, 코로나19 팬데믹 약 2년간 스스로가 자본주의 한 가운데로 던져진 아이 같다고 느꼈다"고 말했다.<카지노 베이비>는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탄광촌에서 카지노 마을이 된 가상의 도시 '지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당포에 맡겨진 아이'의 눈으로 전달하는 소설이다."코로나19 기간 동안 '누가 나한테 자본주의, 투자에 대해 좀 제대로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가장 많이 했어요. 주위에서는 모두가 '너 이대로 살면 안 돼' '뭔가에 투자해야 해' 말하는 것만 같았어요. 늘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왔는데도 갑자기 '자본주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한 번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마을 이름 '지음'은 사북지역의 옛 이름 '사음'에서 따왔다. 그는 "초고 제목은 '아이들의 땅'이었다"며 "나중에 생각해보니 '지음'이 '땅의 소리'라는 뜻도 될 수 있겠더라"고 했다.동양 최대의 광업소 지역, 폐광촌, 카지노 마을을 거치는 지음의 운명처럼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은 녹록치 않다. 그럼에도 소설은 섣불리 비관하거나 낙관하지 않는다. 강 작가는 "지음이라는 도시는 부침을 많이 겪지만, 그 속에서도 인물들은 어떻게든 살아가려 노력한다"며 "희망하거나 위로하기보다 그 생명력에 주목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출판사 편집자인 강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다. 대학생때는 문학 동아리 '고대문학회' 활동도 했다. 편집자가 된 뒤에는 매일 1시간씩 일찍 일어나 소설이나 시를 쓰고서 출근했다. 가입자가 혼자뿐인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두고 글을 쌓았다. 경기도 외곽인 집에서 서울 회사까지 오가는 왕복 2시간 40분의 출퇴근길에 휴대폰으로 글을 다시 읽으며 퇴고했다.혼자 읽고 혼자 쓰던 그를 바꾼 건 로버트 맥키의 책이었다. 2018년 즈음 로버트 맥키의 작법서를 편집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소설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았다. 맥키의 조언대로 초기 구상에 공을 들여 목차를 짜는 데만 1년가량 걸렸다. 소설 쓰는 마음가짐을 담은 파일명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1'는 수정을 반복한 끝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34'로 마무리됐다.그의 첫 번째 독자는 출판사 편집자 출신인 아내다. 그는 "아내는 제게 가장 훌륭한 조언자"라고 말했다."처음에는 화자가 어른과 아이 두 명이었어요. 초고를 아내한테 보여줬는데, 아이 나오는 부분은 재밌는데 어른 화자 부분은 '노잼(재미가 없다)'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른 화자에게 제가 정을 제대로 못 줬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화자를 아이로 바꾸고 나니 동선이나 생각에 한계가 생겼어요. 그 안에서 이야기가 소화되도록 하고 나머지는 버렸어요."<카지노 베이비>는 이대로 끝이 아니다. 강 작가는 "지음이라는 공간을 계속 조망해보고 싶다"고 했다. 지음을 배경으로 <카지노 베이비> 속 인물들이 각각 등장하는 연작소설도 구상 중이다."실제로 사북지역에 마지막 광부들의 자녀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거든요. 사북지역에 젊은이들이 가게를 내고 지역을 정화하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흐름도 흥미로워요. 단순히 (사북지역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 지역에 대한 탐색에 중점을 두고 소설을 썼어요. <카지노 베이비> 결말에도 다음 소설을 위한 장치를 심어뒀죠. (웃음)"역대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들은 주류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1996년 제정된 한겨레문학상의 역대 수상작으로는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장강명의 <표백>,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강화길의 <다른 사람>,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 서수진의 <코리안 티처> 등이 있다.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주(6월 25일) ‘2022년 여름에 읽어야 할 최고의 번역 소설’ 가운데 하나로 신경숙 작가의 《바이올렛》을 꼽았다. 지난 3월 뉴욕타임스가 구병모 작가의 《파과》를 비중 있게 다룬 지 3개월 만에 또다시 세계 유력 언론이 한국 소설을 소개한 것이다. 김지연 위즈덤하우스 편집자는 “몇 년 전만 해도 볼 수 없었던 일”이라며 “그만큼 한국 문학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한국 문학의 몸값이 높아진 건 몇몇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한국 문학작품이 해외 문학상을 받거나 후보에 오른 건수는 17차례에 이른다. 10년 전(2011년)에는 딱 1건이었다. 올해도 거침없다. 5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부커 국제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의 소설집 《저주토끼》가 대표적이다. 2월엔 김금숙 작가의 그래픽 노블 《풀》이 체코 뮤리엘 만화상을, 3월엔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여름이 온다》가 ‘아동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았다.4월에는 손원평의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이 일본 서점대상(번역소설 부문), 5월엔 김소연의 시집 《한 글자 사전》이 일본 번역대상을 받았다. 지난달 22일에는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달 샤베트》가 보스턴글로브 혼북 어워드를 수상하며 활약을 이어 나가고 있다. K팝과 K드라마에 이어 ‘K문학’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2003년부터 2015년까지 13년 동안 거둔 해외문학상 수상·입후보 성과(16건)를 1년 만에 달성한 셈”이라고 말했다.한국 문학의 인기는 선인세에도 나타난다. 선인세란 책을 팔기도 전에 돈을 주고 판권을 사 가는 것을 말한다. 역동적인 사회상과 결합한 독특한 상상력이 한국 문학의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뉴욕타임스는 《파과》에 대해 “60대 여성 킬러를 통해 노인 문제를 풀어냈다”고 평했다. 부커상 재단은 《저주토끼》를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이용해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와 잔혹함을 다룬 작품”이라고 소개했다.한국 문화 전반에 걸쳐 관심이 늘어난 점도 도움을 줬다. 2016년 한국 최초의 부커 국제상 수상작인 《채식주의자》, 201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 미국에 한국 드라마 열풍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과 ‘파친코’ 등으로 인한 한류 열풍이 문학 한류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