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힌쇼 회고록 '낙인이라는 광기' 출간
처벌과 낙인…정신질환자를 보는 차가운 시선
"이 책을 쓸 엄두를 내기까지 말 그대로 평생이 걸렸다.

"
최근 번역 출간된 '낙인이라는 광기'(아몬드)에서 저자 스티븐 힌쇼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정신의학과 교수가 머리말에 쓴 내용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양극성 장애를 앓았다.

조증과 울증이 동시에 나타나는 심각한 '정신 질환'이다.

양극성 장애 환자들은 통상 무력감과 절망감에 시달린다.

그러다 갑자기 조증이 발현된다.

충동이 일지만, 감정 조절은 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부정적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는 양극성 장애 환자 중 절반이 자살을 시도하고, 그중 3분의 1이 실제 사망한다.

저자의 아버지도 그랬다.

저명한 논리 철학자였지만 가끔 횡설수설했고, 불같이 화를 내 식구들을 불안하게 했다.

그러다 몇 주, 길면 몇 달간 자취를 감췄다.

저자와 그의 여동생은 어린 시절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 당혹했고, 상처도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사라질 동안에는 우리 둘 다 절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감히 그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
아버지의 기행은 갈수록 심해졌다.

축음기로 종교 음악을 귀가 찢어지도록 크게 틀어놓았고, 알 수 없는 스페인어로 혼잣말을 했다.

저자가 대학에 간 이후에야 비로소 아버지는 저자에게 자신이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3살 때 친모를 여읜 그는 유년 시절 양어머니에게 지속해서 학대를 받았다.

십 대 시절에는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갇혔다.

박사 학위를 받은 직후에는 인슐린 혼수 요법, 전기 경련 요법을 받았다.

치료 과정에서 때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처벌과 낙인…정신질환자를 보는 차가운 시선
저자는 아버지가 유전과 학대라는 복합적 요인에 따라 병이 깊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양극성 장애의 요인은 유전일 가능성이 크지만, 학대 역시 주요 요인이 될 수 있어서다.

"어떤 정신질환도 단일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이 밝혀졌다.

정신적 취약성은 복잡한 유전자 조합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난다.

"
아버지의 불완전한 상태는 자녀와 아내에게 악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는 어린 자녀에게 이를 공개하지 못했다.

정신병이라는 '사회적 낙인' 때문이었다.

저자의 가족들은 '누군가 병을 눈치채지 않을까' 걱정하고, 어머니는 모든 걸 꼭꼭 숨기기 위해 노력했으며 아버지는 '세상에서 무효 처리된 인간'이라는 생각을 내재화했다.

저자는 "아버지의 인생 궤적을 되돌아보며, 나는 그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며 "처벌과 낙인이야말로 아버지 삶의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낙인을 찍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정신질환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줘야 한다고 곁들인다.

"여전히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 대부분이 첫 발병 후 십 년이 넘어서야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다.

정신적 문제 전반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외면하려 들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의 확실한 치료제는 아직 없지만, 적절한 개입을 하면 대체로 신체장애에 대한 치료만큼 효과가 있다.

"
신소희 옮김. 453쪽. 2만5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