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987개의 작은 정사각형…격자의 집합에 담은 세계
지난 25일 해외 유력 미술 전문지들은 일제히 인터넷판 머리기사로 “뉴욕 미술계의 거인이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그는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제니퍼 바틀릿(1941~2022).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1970~1980년대 미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였다. 1980년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비엔날레에 사실상 ‘미국 국가대표’로 나섰을 정도였다. 여성 화가에 대한 평가가 박한 시기였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그림을 그려넣은 정사각형 금속 패널을 격자 형태로 여러 장 배치한 ‘모눈종이 그림’이다. 그중에서도 ‘랩소디’는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다. 1975~1976년에 만든 이 작품은 산과 집, 도형 등을 그린 987개의 정사각형으로 구성돼 있다. 가로가 46.6m, 세로가 2.3m에 이른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자 미술계는 “추상과 구상,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절묘하게 결합했다”며 열광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했던가. 정작 본인은 “나는 그저 정리정돈을 좋아할 뿐 거창한 미학적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국내에선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