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여기가 미술의 '파라다이스'
‘미술 컬렉터들의 파라다이스’.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를 부르는 또 다른 말이다. 그럴 만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 미국을 대표하는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 산업 디자인의 거장 알렉산드로 멘디니, 세계 미술시장의 총아 구사마 야요이·데이미언 허스트까지…. 이 호텔은 미술관도 아니면서 세계적인 미술관의 현대미술 기획전만큼이나 화려한 작품들을 1년 내내 상설로 선보인다.

파라다이스 리조트에 머문다면 국내외 작가의 미술 작품을 3000점 넘게 만날 수 있다. 웬만한 미술관이라면 자랑하듯 전시했겠지만, 파라다이스에는 로비나 통로에 대수롭지 않은 듯 걸려 있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작품 감상은 무료라 아는 사람들은 하루 정도 길게 잡고 ‘그림 보러 파라다이스 간다’고도 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간다면 무심히 지나치기 쉽다. 이곳에서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눈을 크게 뜨고 복도 끝 작은 벽 하나 놓치지 마시라. 주옥같은 미술품들을 소개한다.
허스트가 반기고, 구사마가 품는다
1층 로비 입구는 이 호텔의 상징이자 하이라이트다. 미술 애호가들에게 국내외 거장의 작품을 자신 있게 선보이는 자리다. 입구에 들어서면 날개 달린 말 동상이 버티고 서 있다. 절반은 황금색, 절반은 해부한 듯 시뻘건 핏줄과 근육이 다 드러난 기이한 형상이다. 현대미술 거장 데이미언 허스트가 삶과 죽음을 주제로 만든 조형 작품 ‘골든 레전드’다.

로비에는 구사마 야요이의 ‘그레이트 자이언틱 펌킨’이 존재감을 뽐낸다. 개장과 함께 설치된 이 작품 덕에 로비는 파라다이스시티의 ‘대표 포토존’이 됐다.

영종도, 여기가 미술의 '파라다이스'
고개를 돌리면 한국 현대미술 거장 이강소 화백의 ‘SERENITY-16103’가 보이고, 프론트 데스크 뒤로는 미국 추상화가 피터 핼리의 작품 ‘PARADISE LOST I-IV’가 버티고 있다. ‘위아래를 뒤집은 그림’으로 유명한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이브닝 벨스’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림이다. 아케이드로 이어지는 공간 앞에서는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와 숫자 9를 표현한 ‘NINE’을 만나볼 수 있다. 카지노가 있는 리조트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로비에서 파라다이스시티 컨벤션센터로 이어지는 길인 ‘레드윙’에는 명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나와 있다. 스페인 유명 조형예술가 하우메 플렌자의 ‘ANNA B.IN BLUE’는 흑요암으로 소녀의 얼굴을 표현한 거대 조각이다. 눈을 감고 명상하는 듯한 모습과 흑요암 특유의 빛깔이 차분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벽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단색화로 꼽히는 박서보의 ‘묘법’과 김창열의 ‘물방울’ 연작이 걸려 있다.

이 공간의 하이라이트는 컨벤션센터 입구의 오색찬란한 거대 의자 ‘파라다이스 프루스트’. 디자인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파라다이스호텔을 위해 제작했다. 가로·세로·높이가 모두 4.5m로, 연작 중 가장 큰 규모다. 한국의 전통 조각보를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건물 밖도 예술…복도 구석구석도 갤러리
영종도, 여기가 미술의 '파라다이스'
2018년 9월 개장한 전시공간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도 로비 못지않게 작품 라인업이 화려하다. 제프 쿤스의 ‘게이징 볼-파르네스 헤라클레스’는 헤라클레스상 앞에 동그란 파란색 유리구슬(게이징 볼)을 붙인 작품이다. 구슬에는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모습이 비치는데, 이 역시 작품의 일부가 된다.

여러 색의 점을 찍은 데이미언 허스트의 ‘AUROUS CYNAID’는 그를 상징하는 ‘스폿 페인팅’ 시리즈 중 세계에서 가장 큰 작품이다. 백남준이 미국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새’에서 모티브를 얻은 ‘HITCHCOCKED’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카지노로 향하는 통로인 ‘골드윙’의 예술작품들은 카지노 주 이용객인 중국인을 겨냥한 공간답게 화려하다. 박찬걸이 스테인리스 스틸을 쌓아 만든 다비드상 ‘다비드’와 로버트 라우션버그가 금속에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이미지를 옮긴 ‘콘티넨털 스플래시’가 금속 특유의 광채를 뿜어낸다. 라우션버그는 20세기 미국 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가다. 중국 현대미술가 딩이의 ‘무제’, 이세현의 ‘BETWEEN RED-016NOV’ 작품은 붉은 색조 덕분인지 중국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외부도 예술이다. 컨벤션센터 정원에 설치된 ‘Ray’는 인도 현대미술 거장 수보드 굽타가 4000개 스테인리스 스틸 주방용품을 용접해 세운 조형물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시 커푸어의 구조물 연작 ‘C-Curve’,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형태로 전시된 앤터니 곰리의 ‘Another TIme XXI’도 한참을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만 모아놨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리조트 곳곳의 작품 3000점 중 90%는 한국 작가 작품이다. 객실이 시작되는 5층부터 11층까지 복도는 국내 작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공간이다. 문범·국대호·이열 등의 작품이 숙박객들의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