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 체크인 카운터 전광판에 국제선 항공편이 안내되고 있다. /뉴스1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 체크인 카운터 전광판에 국제선 항공편이 안내되고 있다. /뉴스1
중소기업 직장인 김모 씨(32)는 이번 여름 휴가 때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해외여행을 가려다가 포기했다. 지난해 결혼해 신혼여행을 제대로 가지 못해 해외여행을 계획했지만 최근 물가가 치솟으면서 비용 부담이 너무 커져서다. 아내와 두 식구 비행기 값만 거의 500만원에 육박했으며, 숙박비·밥값까지 고려하면 여행 한 번에 700만~800만원 이상 들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김씨는 “물가가 너무 많이 뛴 데다가 환율까지 달러당 1300원을 돌파하면서 부담이 너무 커졌다”며 “코로나19 재확산 조짐이 보이면서 감염 우려도 컸다. 아쉽지만 올해까진 국내 여행으로 만족할 생각”이라고 했다.

여름철 휴가를 앞두고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포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입국자 격리의무도 사라지면서 여행·외출 수요가 커졌지만, 급등한 물가 탓에 어쩔 수 없이 해외여행 계획을 접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코로나만 풀리면 해외여행을 꼭 가고 싶었는데 비행기 표값을 보고 너무 놀라 나갈 수가 없다”, “어렵게 항공권을 구해도 숙박비와 렌터카 비용 등 해외 체류비까지 너무 비싸 선뜻 여행하기 어렵다” 같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 여행사 카운터에서 여행객이 안내를 받고 있다. /뉴스1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 여행사 카운터에서 여행객이 안내를 받고 있다. /뉴스1
26일 통계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국제 항공료는 전년 동월 대비 21.4% 올랐다. 국제 항공료는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국제유가가 폭등했던 2008년 10월(23.1%) 이후로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해외단체여행비도 전년 동월 대비 4.6% 올랐다.

직접 비행기 표를 구매해보면 여행 경비의 상승 폭이 더 크게 체감된다. 올해 7월 말 기준 인천~뉴욕 왕복 항공권 가격은 350만~400만원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2배 가까이 오른 가격이다. 유럽의 경우 인천~파리 왕복 항공권 가격이 300만~320만원, 인천~런던은 530만~560만원에 달한다. 가까운 일본 도쿄 역시 국적기 이용 시 왕복 항공료가 60만원에 육박한다.

이처럼 천정부지로 뛴 항공권 가격과 물가가 해외여행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국제유가마저 치솟으면서 당분간 항공권 가격이 안정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국제항공료에 더해 환율도 1300원대에 육박하면서 해외여행에 대한 부담은 더 커진 상황이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 여행사 카운터에서 여행객이 안내를 받고 있다. /뉴스1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 여행사 카운터에서 여행객이 안내를 받고 있다. /뉴스1
증권회사에 다니는 박모 씨(34)도 열흘 휴가를 내고 가족들과 하와이 여행을 계획했다가 결국 취소했다. “호텔 비용과 항공권 가격만 알아봤는데 가족 세 명에 1000만원이 넘어 갔다”며 “항공료를 아끼려 경유하는 비행기를 알아본 결과”라고 푸념했다. 박 씨는 “알맞는 항공권도 거의 남지 않았으며 환율이 높아 현지 렌터카 비용 등까지 더하면 여행 경비를 부담할 만한 엄두가 안났다”며 “이번에도 그냥 제주도로 가기로 했다”고 아쉬워했다.

항공권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것은 일차적으로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에 따라 여행 수요가 늘어난 가운데 증편이 더디게 이뤄지면서 항공권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서비스에 따르면 지난달 국적기 국제노선 탑승객은 55만6065명으로 지난 2월(18만175명) 대비 3배 이상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항공권 공급은 50만1081석에서 74만9438석으로 50%가량 느는 데 그쳤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5월 636만4404석 대비 10분의 1 수준이다.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코로나19 검사센터 모습. /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코로나19 검사센터 모습. /연합뉴스
올 여름을 기점으로 재유행 가능성이 있는 코로나19, 최근 주요국가에서 발생한 원숭이두창도 해외여행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번 여름휴가철을 기점으로 원숭이두창 전파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방역당국은 해외 입국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내 유입 가능성을 고려해 원숭이두창을 코로나19, 홍역 등과 같은 법정 감염병 2급으로 지정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최근 물가 상승과 환율 급등 등으로 여행 경비가 부담된다며 문의를 했다가도 예약을 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며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여행 수요가 회복하는 모습이었는데, 고물가와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다시 감소하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