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리 랑그바드 작가(왼쪽)가 <그 여자는 화가 난다> 국내 출간을 계기로 7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책 집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현장 통역은 이훤 시인(오른쪽)이 맡았다. /난다 제공
마야 리 랑그바드 작가(왼쪽)가 <그 여자는 화가 난다> 국내 출간을 계기로 7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책 집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현장 통역은 이훤 시인(오른쪽)이 맡았다. /난다 제공
"여자는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수출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어린이를 입양 보내는 국가는 물론 입양기관도 국가 간 입양을 통해 돈벌이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한국에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마야 리 랑그바드는 자신의 책 <그 여자는 화가 난다>에 이렇게 썼다. '화가 난다'는 구절이 반복되고 변주된다. 개인사를 넘어 '입양 산업'을 방치하거나 육성한 한국 사회를 향해 분노를 터뜨린다. 그녀의 분노는 입양인, 여성, 퀴어로서 살아가며 부딪혀야 했던 현실에 대한 증언이다.

7일 마야 작가는 <그 여자는 화가 난다> 국내 출간을 기념한 기자 간담회에서 "이 분노는 깊은 슬픔이기도 하다"며 "친부모로부터 분리돼야 한다는 슬픔, 실제 입양 과정을 알게 되면서 체계적인 입양에 대한 믿음을 잃고 겪은 슬픔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그 여자의 분노는 '화풀이'에 머물지 않는다. 정교하고 집요한 분노다. 저자는 분노를 동력으로 한국 입양 산업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추적해나간다. 마야 작가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2007~2010년 서울에 거주하며 이 책을 썼다. 그 과정에서 입양인 공동체 내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그들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창작활동의 소재가 됐다.

"여자는 아이들이 친부모와 함께 자랄 수 있는 권리를 간과하는 사회에 화가 난다. (…) 여자는 국가 간 입양이 공급과 수요를 바탕으로 산업화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바로 그 때문에 불법 입양 사례가 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 여자는 아이들이 불법으로 입양 보내진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저자는 한국에서는 입양 철회권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 입양기관이 양부모에게 친부모의 생사 여부 등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짚어낸다.

입양인의 분노는 여성, 퀴어의 분노로 이어진다. 미혼모의 입양 결정, 낙태 문제, 동성애자 부부의 결혼·입양 권리 등은 한국 사회의 성차별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마야 작가는 "제가 입양됐을 당시 여자라는 이유로 먼저 선택됐다는 얘기를 들었고, 집안에서 아들을 원했는데 딸을 낳아 입양을 보냈다는 사례도 많이 접했다"며 "입양은 성별과도 밀접한 문제"라고 했다. "덴마크에서도 한국에서도 저는 늘 소수자입니다. 중심 바깥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관찰하며 배울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덴마크에서는 2014년 출판됐다. 출판사 난다 대표인 김민정 시인이 동료 문인에게 이 책을 추천받은 것을 계기로 뒤늦게 국내 출간됐다. 김 대표는 "국내에는 덴마크어 전문 번역가가 없었다"며 "노르웨이에 거주하며 스칸디나비아문학을 번역하고 있는 손화수 선생님이 번역을 맡아주셨다"고 했다.

마야 작가는 "처음 글을 쓸 때는 덴마크 독자를 염두에 뒀지만, 계속해서 한국에서도 이 책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8년 뒤인 오늘, 그 소망이 이뤄져 기쁘다"고 했다. "입양아라는 정체성뿐 아니라 글 쓰는 사람, 작가로서 한국에 올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책은 시이자 소설이다. 마야 작가는 "이 책은 시일 뿐 아니라 하이브리드 장르"라며 "장시의 형식, 시적 호흡과 리듬이 책을 이루는 주요 요소이지만 여러 인물들이 계속해서 여정을 이어나기 때문에 각 인물을 따라가는 소설로도 읽어봐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김혜순 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한국인들이여, 자 이제, 우리의 진실을 마주할 준비를 하라"며 "우리가 전 세계에 버린 아이들이 돌아왔다"고 했다. "한국인들이여, 우리가 신봉하는 국가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 혈연주의, 순결주의, 가부장제가 어떻게 우리의 아이들을 비참의 고통에 몰아넣었는지 바라보라. (…) 그리하여 우리는 통곡하라. 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불길에 온몸을 데이면서."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