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파라다이스 카페'·'크레파스'
요절한 소설가 채영주 20주기…중단편 선집·장편소설 출간
소설가 채영주가 마흔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건 2002년 6월이었다.

한일월드컵 열기가 한창 뜨거웠던 때다.

뚜렷한 병명도 모른 채 신경쇠약 등으로 투병하며 작고하기 전엔 식사도 못 할 정도로 기력이 쇠했다고 한다.

도서출판 문학과지성사가 채영주 20주기를 맞아 중단편 선집 '새벽 2시 파라다이스 카페'와 장편소설 '크레파스'를 펴냈다.

문학평론가 한수영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와 김형중 조선대 국문학과 교수가 책임 편집을 맡았다.

한 교수는 채영주의 고교 친구다.

'새벽 2시 파라다이스 카페'에는 두 권의 소설집에서 뽑은 10편을 수록했다.

표제작과 데뷔작 '노점 사내'를 비롯해 '가면 지우기', '지난겨울의 불', '상처', '상자 속으로 사라진 사나이', '담배와 포도주' 등이 담겼다.

이들 작품에서 작가는 1980년대를 상징하는 변혁, 혁명 등 거대 담론 대신 소시민의 위선과 무기력한 초상, 지식인의 번민 등에 천착하고, 나아가 자기 성찰의 태도를 보였다.

한수영 평론가는 선집 해설에서 채영주는 현실 세계의 부당함과 모순을 꿰뚫었다고 짚으며 "현실의 이면과 어두운 곳, 혹은 사각지대를 응시하며 현실의 공간과 피안의 세계의 간극을 오가며 탐색"했다고 평했다.

요절한 소설가 채영주 20주기…중단편 선집·장편소설 출간
장편 '크레파스'는 미학사에서 1993년 출간돼 절판된 작품을 복간했다.

지금의 표기에 맞춰 단어 등을 다듬고 김형중 평론가의 해설을 더했다.

누아르 영화 문법을 차용한 이 작품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배경으로 한국 이주민과 흑인 간의 인종 갈등을 다뤘다.

그 이면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백인, 자본가 세력을 꼬집으며 약한 이들의 오해와 폭력으로 표출되는 세태를 비판했다.

"미국의 백인 자본은 자기 나라 국민에 대한 사랑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던 거야."
채영주는 1993년 작가의 말에서 "다행스러웠던 점은 도시는 멀어도 삶은 결코 멀어질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며 "분노는 늘 가까운 곳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고 적었다.

1962년생인 채영주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노점 사내'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그의 동창 등 지인들에 따르면 대학교 4학년 때 유학을 계획했던 그는 갑자기 잠적했고 몇 달 만에 돌아와 "소설을 쓰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 기간 고인은 대전과 전주, 광주 등지에서 웨이터, 주방보조, 빵공장 직공 등으로 일했고 이 경험은 단편 '미끄럼을 타고 온 절망'에 녹아있다.

그는 두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유고집을 포함해 총 13권의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담장과 포도넝쿨', '시간 속의 도적', '목마들의 언덕', '크레파스', '무슨 상관이에요' 등의 장편 소설과 '가면 지우기', '연인에게 생긴 일' 등 소설집, 무협지 '무위록', 동화 '비밀의 동굴', 유고집 '바이올린맨' 등이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