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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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골프 강국’이 된 것은 언제일까. 일각에선 박세리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를 휩쓴 1990년대 말~2000년대 중반을 꼽는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퍼블릭 골프장이 전국 곳곳에 들어선 2010년대 초중반이라고 말한다. 골프 강국은 걸출한 스타 몇 명을 배출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골프의 저변이 넓어질 때 달성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은 아직 ‘고급문화 강국’이 아니다. 골프의 박세리, 고진영처럼 클래식과 미술에서도 세계 무대를 휩쓰는 ‘토종 스타’가 많지만 일반인이 즐기기엔 여전히 문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보다 비싼 클래식 티켓

日보다 70% 비싼 韓클래식 티켓값…"문화강국 되려면 문턱 낮춰야"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이 대표적이다. 국민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고급문화를 찾는 수요가 크게 늘고 있지만 공급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대형 오케스트라 공연을 할 만한 장소가 예술의전당, 롯데콘서트홀 등 손에 꼽을 정도여서다. 좌석은 정해져 있는데 앉으려는 사람은 많으니, 티켓값이 계속 오른다.

옆 나라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 클래식 애호가들이 얼마나 비싼 돈을 주고 관람하는지 알 수 있다. 이달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독일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의 R석 가격은 25만원. 5일 먼저 열린 일본 도쿄 산토리홀 공연에서 같은 지휘자가 연주한 공연의 최고석(S석) 가격 1만5000엔(약 14만3500원)보다 70% 넘게 비싸다.

공연계 관계자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다 보니 웬만큼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가격이 얼마든 간에 ‘예매 전쟁’이 벌어진다”며 “고급문화 저변을 넓히려면 공급부터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사회 전반에 깔린 ‘클래식=사치재’란 인식부터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야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공연장을 곳곳에 지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관계자는 “클래식 공연장을 짓는 것은 ‘극소수의 고소득층을 위한 세금 투입’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인프라 투자’란 국민적 공감대부터 형성돼야 한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공연장이 많이 생겨야 공급이 늘고, 그래야 더 많은 국민이 클래식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생활미술 인프라 확충해야”

저변이 넓지 않기는 미술도 마찬가지다. 4년 만에 시장 규모가 2배(2017년 4942억원→2021년 9223억원)가 됐지만, 그 과실은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등 원로 단색화가나 해외에서 활동하는 김수자 양혜규 등 몇몇 유명 작가에게 집중되고 있어서다. 대다수 신인·중진 작가의 작품은 그때나 지금이나 창고에서 빛을 못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미술시장 팽창이 ‘경매업체 주도 성장’(경매 비중 2020년 28%→2021년 35%)이었던 점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화랑은 작가를 발굴해 키우지만 옥션은 구매자를 찾아 소장품을 비싸게 파는 게 목표다. 자연히 옥션에 올라오는 작품은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중심이 된다. 이러니 신진작가는 설 틈이 없다. 한 중견 화가는 “미술시장이 급성장했다지만 상위 1%에만 해당하는 얘기일 뿐 무명 작가들이 이름을 알리고 성장할 수 있는 통로는 오히려 좁아진 것 같다”고 했다.

생활미술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미술 강국’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골프를 치는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 특급 프로골퍼가 나오듯 누구나 쉽게 캔버스를 들 수 있는 나라에서 좋은 화가가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참여’보다는 ‘관람’에 미술 문화의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유명 작가의 작품에 대한 관심만 더 높아진다. 업계 관계자는 “헬스클럽이나 골프연습장처럼 직장인이 업무를 마치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음악·미술학원이나 동사무소 문화센터 프로그램이 늘어나면 한국의 고급문화 수준이 한 번 더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조동균/성수영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