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3일 개막하는 연극 ‘햄릿’에 나란히 단역으로 출연하는 연극계 ‘여배우 트로이카’ 윤석화(왼쪽부터), 손숙, 박정자.   /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다음달 13일 개막하는 연극 ‘햄릿’에 나란히 단역으로 출연하는 연극계 ‘여배우 트로이카’ 윤석화(왼쪽부터), 손숙, 박정자. /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평균 나이 74.6세, 연기 경력 도합 165년. 연극계를 주름잡는 ‘여배우 트로이카’ 박정자(80)·손숙(78)·윤석화(66)의 숫자로 본 경력이다. 이들 중 맏언니 박정자는 1962년 데뷔해 올해 연기 인생 60돌을 맞았다. 출연작이 160여 편에 달하는 연극계 대모다. 2년 뒤 데뷔한 손숙은 지금껏 백상예술대상 다섯 번 수상이란 대기록을 세웠다. 1975년 데뷔한 윤석화는 연극을 중심으로 뮤지컬, 영화, 공연 제작 등 다방면에서 활약해온 ‘팔방미인’이다. 세 사람은 22년 전 안톤 체호프의 연극 ‘세자매’에서 세 자매로 처음 호흡을 맞췄다.

이후 ‘세 자매’같이 지내온 이들이 다음달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햄릿’에서 다시 뭉친다. 햄릿의 지시로 궁정에서 극중극 ‘곤자고의 살인’을 연기하는 유랑극단의 배우 1·2·3 역을 맡았다. 이들이 함께 출연할 뿐 아니라 이름도 없는 단역을 맡았다는 소식에 연극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지난 28일 서울 미아동 연습실에서 ‘햄릿’ 연습을 마치고 나온 ‘트로이카’를 만났다.

“연극에 ‘작은 역할’은 없어”

연극 ‘햄릿’의 극중극 장면을 연습하는 손숙(왼쪽부터)·손봉숙·박정자·윤석화.
연극 ‘햄릿’의 극중극 장면을 연습하는 손숙(왼쪽부터)·손봉숙·박정자·윤석화.
먼저 작은 역할에 불만은 없느냐고 물었다. 손숙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연극에 ‘작은 역할’은 없어요. ‘작은 배우’는 있겠지만.” 윤석화도 거들었다. “성에 차지 않는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는 것보다 좋은 작품에서 지나가는 행인이라도 출연하는 게 더 좋아요.” 손숙이 “대사가 일곱 마디밖에 되지 않는다”고 장난 섞인 투정을 부리자 박정자가 달래며 말했다. “내 대사 좀 줄까? 근데 나도 비슷하긴 하다.”(웃음) 대사는 적지만 세 사람이 맡은 유랑극단의 ‘배우들’은 극을 열고 닫는 역할을 한다. 이번 ‘햄릿’을 연출하는 연극계 거장 손진책의 버전에서만 볼 수 있는 설정이다.

신시컴퍼니가 제작하는 이 작품은 2016년 이해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한 연극인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당시 제작진과 배우들이 6년 만에 뭉쳐 다시 무대에 올린다. 특이한 점은 트로이카를 비롯해 권성덕, 전무송, 정동환, 유인촌, 김성녀, 손봉숙 등 원로급 배우들이 주연에서 물러나 조연 및 앙상블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분량은 얼마 안 되지만 연습실에 꼬박꼬박 출석해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세 사람은 연습실에 나오는 자체가 행복하단다. 박정자는 “우리에게 연습실이나 분장실, 공연장은 성소(聖所)와 같이 소중하고 귀한 공간”이라고 했다. 손숙은 “연습 때마다 형님(박정자)이 5~6시간 동안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는다”며 “사실 요즘 건강이 안 좋고 힘들지만, 연습실에만 나오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함께 출연하는 후배들에게는 ‘하늘 같은 대선배’지만 조언이나 지적은 조심스럽다고 했다. 윤석화는 “흘러가듯 가벼운 조언도 후배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어 칭찬만 하려고 한다”며 “가끔 박지연(오필리어 역)이나 박건형(레어티즈 역)이 조언을 구해도 ‘네가 생각하는 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박정자와 손숙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역을 맡은 젊은 배우들은 우리의 열 배, 스무 배 이상 에너지를 쏟아야 해요. 안 그래도 부담스러울 텐데 선배들이 계속 지적하면 잘되겠어요? 조용히 지켜보고, 맛있는 거나 사줘야지.”

“무대 서는 건 아직도 떨리고 긴장돼”

수십 년의 연극 경험을 쌓은 이들에게도 무대에 오르는 것은 여전히 긴장된다고 했다. 손숙은 “무대에 서는 건 늘 새롭다”며 “설레는데 겁나기도 하고, 무대 뒤에서 엄청 떤다”고 털어봤다. 박정자도 “갈수록 책임감도 커지다 보니 점점 더 많이 떨린다”고 거들었다.

‘트로이카’란 이름으로 묶인 이들은 수십 년간 때로는 배우로서 경쟁하고, 때로는 친구로서 의지하면서 쉽지 않은 연극계 생활을 버텨왔다. 박정자는 손숙과 윤석화란 두 후배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로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죠. 이 가난하고 어려운 연극을 평생 같이 해온 인연을 만나기 쉬울까요. 굉장히 고맙고 뜨뜻한 동료들이죠.” 그러자 손숙이 외쳤다. “이하동문! 동료보단 이제 전우 같은 느낌이에요.” 윤석화가 마무리를 지었다. “미투(Me too)!”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