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진행된 연극 '과수원의 세레나데' 첫 대본 리딩에서 여자 주인공 박은하 역의 이정은 배우가 대사를 읽고 있다. /신동엽학회 제공
지난 27일 진행된 연극 '과수원의 세레나데' 첫 대본 리딩에서 여자 주인공 박은하 역의 이정은 배우가 대사를 읽고 있다. /신동엽학회 제공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던 저항시인 신동엽은 생전 한 권의 번역서를 남겼다. 1968년 출간된 <과수원의 세레나데>. '빨간머리 앤' 작가로 유명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초기 작품으로, 사랑 소설이다. 어떤 사랑 이야기가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국내 독자들에게 직접 소개하고픈 마음까지 들게 만들었을까. 이 소설이 오는 9월 연극 무대에 오른다.

29일 신동엽학회(회장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9월 2~3일 서울 예술공간 혜화에서 '과수원의 세레나데' 연극이 세 차례 상연된다고 밝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예술가 생애 첫 지원’을 받아 이대성 문학연구자가 공연 기획을 맡았다. 지난 27일 권오경 연출가를 비롯해 이종섭·이정은·윤주희·강대준 배우 등 전체 제작진, 배우, 자문위원이 모두 모여 첫 대본 리딩을 진행했다. 공연 기획 자문은 정우영 시인(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제작 자문은 김응교 신동엽학회장이 맡았다.

시인 신동엽의 번역서는 <과수원의 세레나데>(여학생사, 1968)가 유일하다. 이 책에는 로버트 윌리엄 챔버스의 '섬처녀'도 수록됐다. '과수원의 세레나데'는 언어로 말하는 소년과 말하지 못하는 소녀가 필답, 음악과 시, 몸짓으로 교감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이야기다.

신동엽 시인은 이 책에 실린 작품 해설에 이렇게 적었다. "젊은이들에게는 우선,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를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소년소녀 시절에 좋은 작품을 많이 읽고 (…) 우람찬 생활 정신을 창조하며 인생의 이상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기획자 이대성 문학연구자는 “신동엽의 ‘산문시1’에 그려진 세계처럼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 같은 연극을 많은 사람이 관람하기 바랐다”며 “경쟁과 대립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언어와 준언어, 비언어 요소를 모두 동원해서 사랑의 언어를 선물하고 싶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공연 음악도 사랑의 언어 중 일부다. 무대 위에서 가야금, 바이올린, 기타 연주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신동엽 시인의 장남 신좌섭 서울대 의대 교수는 “공연을 기획한 이대성 선생이나 신동엽학회가 이 소설을 연극으로 올릴 생각을 한 것은 시극 운동에 깊이 매료되어 있던 아버님의 문학정신을 읽어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사전행사로는 신동엽이 번역한 '과수원의 세레나데'를 시민과 함께 읽는 독서 세미나가 8월 20일 오후 3시 신동엽학회 주최로 열린다.

‘과수원의 세레나데’ 연극 공연과 세미나는 누구나 무료 참여 가능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고 신동엽기념사업회, 신동엽학회, 필로버스가 협찬한 덕분이다. 자세한 내용은 신동엽학회 다음 카페와 페이스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