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이어령, 눈물만이 인간이란 걸 증명해준다고 했죠"
“이어령 선생은 육필 원고가 많지 않아요. 아주 일찍부터 컴퓨터로 글을 썼기 때문이죠. 그러다 몇 년 전 손이 말을 안 들어 마우스 더블클릭이 안 되고, 전자파가 몸에 느껴지면서 손으로 직접 글을 쓰게 됐어요.”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사진)은 28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눈물 한 방울》(김영사)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30일 출간되는 이 책은 이 전 장관이 2019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27개월간 2㎝ 두께의 노트에 쓴 147편의 시·수필 가운데 110편을 골라내 엮었다. 그가 손수 그린 그림도 담겼다.

강 관장은 컴퓨터를 못 쓰게 되면서 좋은 점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 선생이 컴퓨터로 글을 못 쓰니 찹쌀떡 장수 목소리, 문풍지 소리 등 옛 기억이 돌아온다고 했다”며 “옆에서 보니 기억만 돌아오는 게 아니라 사람이 여유가 생기고 인품도 달라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강 관장은 “이 선생의 노트를 읽다 보면 혼자 저승으로 가야 하는 인간의 외로움이 배어 있다”고 했다. 실제로 노트에 적힌 초기 글은 정돈된 글씨에 그림도 많으나, 뒤로 갈수록 그림 수도 급격히 줄고 글씨도 삐뚤삐뚤해진다. 강 관장은 평소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내보이지 않았던 이 전 장관이 두 차례 크게 운 적이 있다고도 회상했다. 곧 걸음을 못 걷게 될 것 같다고 직감했을 때와 섬망 증상이 와 정신이 망가질까 봐 두려워했을 때다.

이 전 장관은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다. 이후 항암 치료를 이어가는 대신 집필에 몰두했다. “자기 원하는 대로 산 양반이었지만, 그때도 ‘남은 생 얼마 없는데 이거 내 마음대로 하게 해달라’고 하더군요. 밥 먹으란 소리도 하지 말라고요. ‘죽었다고 생각하고 나를 내버려 달라’고 했죠. 그래서 저희가 받아들였습니다.”

‘눈물 한 방울’이란 제목은 이 전 장관이 직접 지었다. 책 서문에서 그는 “스스로 생각해온 88년, 병상에 누워 내게 마지막 남은 것은 무엇일까 한참 생각했다. ‘디지로그’ ‘생명자본’에 이은 그것은 ‘눈물 한 방울’이었다”고 썼다. 이어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준다”며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눈물”이라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