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식 작가가 지난 24일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 전시한 작품 ‘달마시안’을 설명하고 있다. 달마시안을 광각렌즈로 본 모습을 표현한 부조 작품이다.  이솔  한경디지털랩  기자
주후식 작가가 지난 24일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 전시한 작품 ‘달마시안’을 설명하고 있다. 달마시안을 광각렌즈로 본 모습을 표현한 부조 작품이다. 이솔 한경디지털랩 기자
지난 24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로비는 ‘개판’이 됐다. 개를 주제로 한 주후식 작가(51)의 조각과 부조 작품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관람객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작품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행렬이 이어졌다. 비글을 주제로 한 부조 작품은 벽에 걸리기도 전에 팔렸다.

전시회 이름을 ‘동반자: 러브 애니멀’로 지은 주 작가는 상당한 팬층을 거느린 중견 조형예술가다. 이번 전시에선 부조 20점과 조각 4점 등 24점을 내놨다. 주제는 모두 개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작품은 그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벤치 모양의 닥스훈트 조각 ‘닥스훈트’다. 너비 273㎝, 높이 115㎝짜리 대형 작품이다. 주 작가는 “생활이 어려울 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준 작품”이라며 “비교적 고가인데도 만드는 족족 팔려나간 덕분에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이야 인기 있는 작가가 됐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그가 조각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1989년. 고교 3학년 때 미술 선생님의 연구실에서 집어든 책자에서 ‘현대 조각의 선구자’ 콩스탕탱 브랑쿠시의 작품을 우연히 접하면서다.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것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곧바로 조각가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열심히 미대 입시를 준비했지만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결국 고배를 마셨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 돈을 벌어가며 공부하기로 했다. 전남 강진에서 서울로 올라와 봉제공장과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학원비를 벌었다. 하지만 또다시 낙방.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려는 그를 미술학원 선생님이 불러세웠다. “정말 조각가가 되고 싶다면 내년엔 무료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해줄게.”

삼수 끝에 1992년 동국대 미대 신입생이 됐다. 졸업 무렵 외환위기 여파로 미술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전업 작가의 꿈은 멀어졌다.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며 작품활동을 병행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건 2010년 TV에서 본 다큐멘터리였다.

“사람들이 휴가지에 개를 버리고 가는 실태를 고발한 프로그램이었어요. 당시 꽤 화제가 됐죠. 이걸 보고 개의 순수함 등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면을 표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개들이 흰자가 보이는 인간의 눈을 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 작가는 “개를 표현하기보다는 개를 통해 인간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이 사회고발적인 성격만 띠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유기견이나 실험동물 문제를 주로 다뤘는데, 슬픈 개들을 만들다 보니 제 기분도 우울해지더군요. 그러다 ‘세상에는 불행한 개보다 사랑받는 개들이 더 많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행복한 개들을 주로 다루고 있어요. 이번 전시도 그런 작품들로 꾸몄습니다.”

5년 전부터 부조 작품을 구상했지만, 부조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회를 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주 작가는 “한지로 부조 작품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는 데만 4개월 걸렸다”고 했다. 방식은 이렇다. 먼저 작품 모양의 틀을 만들고, 여기에 한지 원료를 채운 뒤 찍어낸다. 작품 1개를 완성하는 데 한 달 반 정도 걸린다.

주 작가는 “내 부조 작품을 식탁 앞에 걸어놓고 매일 본다는 고객이 있다”며 “이럴 때마다 ‘조각가가 되길 잘했다’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2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